▲ IMF라는 거대한 풍랑을 뚫고 세일전자(주)의 오늘을 만든 안재화 대표는 비전기업의 필수조건으로 남다른 기술력을 꼽았다. /조재현기자
탈내수·수출지향으로 IMF 극복… 새 거래선 개척
3년연속 매출·고용 성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안 대표 "세계인이 사용한다는 자부심갖고 뛸 것"

 
규모가 대기업 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남다른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성공을 이룬 기업을 '강소기업', '히든기업'이라고 한다. 특히 인천에서는 이들을 '비전기업'이라 부른다.

인천 비전기업은 뭔가 다르다. 중소기업에 대한 흔한 오해인 주먹구구식 운영, 허술한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또 일정 반열에 오르기까지 겪은 어려움과 극복 과정은 한 편의 영화다.

경인일보는 인천비전기업협회와 손 잡고 지역 내 비전기업을 찾아간다. 인천 비전기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오늘날 그들이 비전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를 찾아 전한다. /편집자주

1998년 한국 경제를 뒤흔든 최대 사건이 일어났다. IMF 구제금융 신청 즉, 외환위기로 설명되는 이 사건은 세일전자(주)가 30여년의 시간을 걸어오며 겪은 일 중 가장 큰 시련이었다.

안재화 세일전자 대표는 당시를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지옥 같은 날들'로 기억했다.

"순식간에 국내 전 분야로 금융, 재정 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생산, 판매, 인력 등 회사 내 모든 분야가 자연스럽게 긴축 체제로 돌아갔지요. 당시 고객 중에는 대기업이 많았는데 그들은 부도유예 조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협력사 입장에서는 지불 정지, 사실상 부도였던 것이지요. 이뿐 아니라 매출 감소, 수주 급감, 자금 고갈, 환율 상승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대 등의 문제가 도미노처럼 벌어져 사면초가 상황이었습니다. 살아남은 것이 기적입니다."

극한의 위기에 몰린 세일전자가 믿는 부분은 '기술력', 단 하나였다. 각종 전자제품의 본체에 해당하는 PCB 개발과 생산에 전부를 걸었던 만큼 기술력과 노하우는 세계 최고임을 자부했다.

안 대표는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는 항상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론은 탈내수, 수출 지향이었다. 빠르게 거래선을 변경하고 시장을 개척해야 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이후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직접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외 거래선을 만들어 갔다"고 설명했다.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해외 시장, 낯선 바이어와의 만남이 수월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언어 장벽도 실감했다.

그는 "궁하니까 통하더라는 말을 몸으로 깨우쳤다. 세일전자와 맞는 업체를 빼놓지 않고 방문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열정이 있었고, 우리 제품과 기술을 믿었다. 하다 보니 짧은 영어로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이 늘었다. 바이어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안 대표는 비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기술력, 기술력으로 쌓은 경쟁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본다.

그는 "내세울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뒤에는 시장의 요구를 읽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는 시장 선점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제품,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인다고 해도 시장이 원하는 게 아니면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시장의 흐름을 살피고 한 발 앞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 기업인의 머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걸음은 빨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IMF 풍파 속을 뚫고 나온 세일전자는 2011년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으로 선정됐다. 또 매출액, 고용자 수가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성장한 '가젤형기업(Gazelles Company)'으로도 꼽혔다.

안 대표는 "지금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늘 어려움은 있다. 기업의 존속을 고민하고,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전쟁같은 시장 경쟁을 깨고 나가야 하는 일은 오너에게 주어진 숙명이다"라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자동차, 스마트폰 강세로 내수 비중이 커졌었는데 올해는 다시 수출로 눈을 돌리려고 한다. 자동차, 휴대전화 등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이용하는 제품에는 세일전자 생산품이 꼭 들어가 있다. 세계인이 세일전자 제품을 사용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다시 뛰고자 한다. 고객 응대, 기술, 품질, 스피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기업으로 남겠다"고 전했다.

/박석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