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단체장의 허황된 선거공약
용인시 경전철사업
결국 市 재정파탄 낸 대재앙
이번 지방선거에선
연고주의·개인적 이해관계
정파적 편견 등 타파해야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여권을 건네주니,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주면서 "참 좋은 동네에 사시는 군요"하며 덕담을 던졌다. 여권에 적힌 내 주소 '용인시'를 두고 한 덕담이지만, 용인이 물 맑고 공기 깨끗하고, 산세 수려하고 지세 안온하여 '참 좋은 동네'라고 한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당시 자고 나면 아파트 시세가 천정부지로 뛰는 소위 '버블 세븐'의 한 곳으로서의 용인에 대한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 시절 용인에서는 논이건 밭이건 대충 금 그어 놓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발표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러하니 건설업자들은 혈안이 되어 아파트 지을 수 있는 땅들을 찾게 되고, 그러하니 건설업자들과 공무원들이 유착하여 아파트 인허가 문제로 얽히고설키는 부패 사슬을 만들게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건설업자와 부패 공무원이 합작하고, 투기꾼이 거간질로 가세한 용인시 아파트 광풍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용인의 대표적 아파트촌인 수지구는 난개발의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건설사들이 여기저기 아파트 지을 부지를 경쟁적으로 사들인 탓에 애초부터 학교, 공원, 문화 복지시설 등이 들어갈 땅을 확보하지 못하여 허둥거렸고, 대중교통, 광역 교통망 확충은 물론 진입로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아파트도 허다했다. 분양 초기에 한 탕 잘해 먹은 투기꾼들은 다 빠져 나가고, 실입주자들은 매입가는 물론 분양가보다도 훨씬 떨어진 아파트를 바라보며 하우스 푸어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난개발 광풍은 용인시 공무원 사회도 초토화시켰다. 주택과장이 줄줄이 검찰에 구속되었고, 이러저러한 혐의로 역대 시장이 모두 한 차례 이상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제1대 윤모 시장, 제2대 예모 시장, 제3대 이모 시장, 제4대 서모 시장이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을 살았고, 제5대 김모 시장은 자신은 구속되지 않았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아들이 징역을, 부인이 재판을 받고 있다.

난개발이 용인의 과거의 악몽이라면 경전철은 미래의 악몽이다. 경전철은 제3대 이모 시장의 선거공약이었다. 이모 시장은 경전철 건설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시하고 수요예측에서 타당성 조사, 재원 조달방안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밀어붙였다. 그리하고도 경전철 사업이 용인시 재정을 파탄내는 대재앙으로 드러나자 "나는 정치인이라 잘 모르고, 공무원들이 모두 결정했다"며 말단 공무원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웠다.

또 하루 경전철 이용인구를 터무니없이 부풀린 용역보고서를 낸 한국교통연구원은 "10년 전에 예측, 계획됐는데, 그 사이에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의 책임만은 아니다"고 강변한다. 그 수요예측 이후 용인시 인구가 20만 명 이상 늘었는데, 10년이 지난 이제 와서 이용인구가 왜 줄었는가?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예측이라면, 그런 국가 연구기관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중앙정부의 용인시 경전철 사업에 대한 '민자사업 타당성 심사'가 유명무실했던 것도 엄청난 문제이다. 1조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라면 국책사업 수준이다. 이러한 규모의 경전철 사업에 대해 관련 부처 장차관들이 모두 '의견 없음'을 써냈다고 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행정과 재정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중앙정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로, 중앙정부도 그 책임을 면치 못한다.

결국 용인시 경전철 사업은 한국교통연구원의 엉터리 수요예측 용역보고서, 용인시장과 시 집행부의 독단적 사업결정, 중앙정부 민자사업 타당성조사위의 부실심사, 건설비 부풀리기, 엉터리 수요예측에 따른 과다한 수익률 보장, 시의회의 동의 무시, 부실공사 등이 단계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대재앙이다. 이 재앙으로 용인시는 건설비 1조원 외에도 매년 500억원 이상을 15년간 경전철 회사에 보전해 줘야 한다.

경전철을 둘러싼 총체적 책임은 용인시에 있지만, 시민들도 자성할 부분이 있다. 그 사람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자질이나 능력보다는, 도덕성이나 실력보다는 개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정파적 편견에 의해, 지연·학연·혈연 등의 연고주의에 의해 투표한 결과가 아닌가? 이처럼 단체장 잘못 뽑으면 시 전체가 파탄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특별히 단체장 선거에 주목하는 이유다.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