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할 수 있고
감동과 생명 담긴 한마디로
위대한 가르침 줄 수도 있다
말(馬)의 해 말 조심하고
조금만 더 심사숙고 하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공포스럽고 두려운 최고의 고전 맥베드에서 장군 맥베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을 만나 "장차 왕이 되실 분 맥베드 장군 만세"라는 은밀하고 달콤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신하의 신분에서 반역을 꿈꾸며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왕이 되어서 왕을 이루게 한 마녀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맥다프에게 죽음을 맞는다. 주변의 말 한마디에 얇은 귀를 열어 일상을 버리고 지옥의 길을 들어선 것이다.

그의 또 다른 비극 리어왕에서 리어왕은 세 딸에게 아비를 사랑하는 정도를 말로 표현하라고 시키는 바람에 진실이 감춰지고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말로 하지 못한 그러나 가장 리어를 사랑하는 셋째 딸을 추방시키는 우를 범하며 가문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이다. 리어를 별로 사랑하지 않지만 첫째와 둘째 딸은 온갖 단어들을 동원하여 리어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대고 그들은 재산과 권력의 반씩을 차지한다. 그 후 리어를 내팽개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말보다 내면을 보지 못한 늙은 왕의 결말이다.

세 치 혀끝으로 나가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나락으로 보내기도 하고 천국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영화가 되어버린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최민식 분)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십오년 동안 좁은 방에 갇혀서 만두만 먹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황당하게도 그가 고통을 당한 이유는 고등학교 때 후배누나의 임신사실을 퍼트렸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후배 앞에서 혀를 잘라버린다. 세 치 혀를 잘못 놀린 무서운 결과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금(昨今)의 현실은 연극이나 영화 속의 말들보다 더 연극처럼 다가오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더구나 요즘은 빛의 속도로 지구전체로 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할 수도 있는 시대이다.

수일 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어리석은 사람 판정을 받았다. 부총리라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은 일이 생기면 남 탓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카드사들과 정부의 총체적 잘못으로 온 국민의 개인정보가 털렸는데 경제수장이 대놓고 어리석은 국민들로 몰아붙이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여수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로 바다가 오염되고 어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관계 장관이 사고 한참 후에 마실 나오듯 나와서 냄새가 싫었는지 코를 막고 심한 줄 몰랐는데 하고 가버렸다. 그 후 해명이 더 어지럽게 한다. 독감으로 옆 사람 피해 안 주려 코를 막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구차해 보인다.

어디 민망한 말잔치가 이뿐인가. 사대 강의 녹조증가가 수질이 맑아진 증거라는 전임 대통령의 강변은 어찌 해석을 해야 하는지 아득하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연예계로 나온 국회의원, 연평도 포격 현장에 가서 보온병 들고 포 탄피라 말하고 기념사진 찍고 전 국민을 즐겁게 해주었던 정치인, 인터넷방송 나꼼수 진행하며 인기가 오르자 국회의원 나가려다 팔년 전 했던 무지막지한 막말이 들통 나 온 나라에 회자되고 고개 숙인 젊은이,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이라 말했다 혼쭐이 나고 물러난 대변인 이 모두가 말하기 전 조금만 심사숙고(深思熟考)했다면 그런 사단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말에 감동과 생명을 불어넣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칼보다 강함을 일깨워 주는 말도 현실 속에 많다. 조선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던진 영웅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자 뤼순감옥으로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 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하게 목숨을 버리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말이 할 수 있는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말(馬)의 해 말(言)을 조심하자. 익숙한 달변이 때론 말더듬으로 보인다 하였다.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