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잊지 않으려고, 그가 죽은 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그가 생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그가 남기고 간 글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그 글들을 모아 그를 기리는 또다른 매개체를 만든다. 잊혀질까 두려워서다. 유고(遺稿)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다. 그 원고를 한데 묶은 것이 유고집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조사에서 늘 부동의 1위에 올라있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시집이며 윤동주가 남긴 단 한권의 시집이다. 해방을 여섯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후, 1948년 그의 동생 윤일주, 후배 정병욱·장덕순의 주도하에 정음사에서 출간됐다. 시집 초판에는 시인 정지용의 그 유명한 서문이 실렸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윤동주처럼 스물 아홉에 요절한 시인 기형도도 생전에 단 한권의 시집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1989년 3월7일 새벽 서울의 한 극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입속의 검은 잎'을 유고시집으로 상재했다. 기형도의 시보다 더 슬펐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그 서러운 발문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수원이 낳은 천재 미술사학자 오주석도 2005년 49세에 요절했다. 그는 뽀얀 먼지 속에 쌓여있는 조선 전통회화를 교양과 흥미가 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대중에게 처음 본격적으로 알린 미술사학자였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역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과 '단원 김홍도'를 집필했던 그는 요절 후 유고수필집 '그림속에 노닐다'가 출간돼 지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지난해 8월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49세에 유명을 달리한 경인일보 고 최우영 사회부장의 유고집이 출간됐다. 유고집에는 그가 생전에 썼던 기사와 칼럼,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의 그에 대한 기억 등 그의 체취가 가득 담겨있다. 특히 그가 죽음을 예상하고 심하게 흔들리는 필체로 가족에 남긴 두장의 편지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유고집을 만든 경인일보 기자들은 "그는 세상과 신문을, 우린 그런 그를 사랑했다"며 그의 아까운 죽음을 애통해 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