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박승희가 1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팔래스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500m 결승에서 영국 선수에게 밀려 넘어진 뒤 다시 뛰려다 재차 넘어지고 있다. /소치=연합뉴스

2014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에 때아닌 '얼음 주의보'가 내렸다.

좋은 빙판 위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내야 할 세계적인 선수들이 빙질이 좋지 않은 스케이트 경기장 곳곳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15일(한국시간)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남자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는 '우승 후보'들이 점프 실수를 연발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신채점방식 도입 이후 최초로 100점을 돌파(101.45점)하며 선두로 나선 하뉴 유즈루(20·일본)도 이 상황을 피해가지 못했다.

첫 번째 쿼드러플 살코와 세 번째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 엉덩방아를 찧어 큰 감점을 받았고, 경기 후반부에는 3연속 콤비네이션 점프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합계 280.09점을 기록하며 하뉴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쇼트프로그램 같은 연기를 보여줄 수 없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하뉴에 3.93점 뒤져 역전 금메달을 노리던 패트릭 챈(24·캐나다)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거듭했다.

챈은 지난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프리스케이팅(196.75점)과 합계(295.27점)에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 초반부터 쿼드러플 토루프, 트리플 악셀 점프에서 안타까운 실수가 나오면서 178.10점에 그쳐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피겨와 같은 경기장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선수들 사이에서도 "얼음이 좋지 않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벌어진 여자 500m 결승에서 박승희(22·화성시청)는 두 번이나 넘어지는 불운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뽐낸 박승희는 엘리스 크리스티(영국)와 부딪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일어나 레이스를 이어가려던 박승희는 얼음에 걸려 다시 한 번 더 넘어지면서 결국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이밖에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이호석(28·고양시청)이 레이스 도중 넘어졌고, 1,500m 준결승에서도 선두를 달리던 신다운(21·서울시청)이 미끄러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승희는 500m 경기를 마친 직후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두 번이나 넘어진 적은 없다"면서 "이곳은 얼음이 단단한 것 같지만 곳곳이 파여 있고 상태가 좋지 않다. 뒤에 있으면 추월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고 밝혔다.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잇달아 이런 일을 겪는 것은 기본적인 빙질과 무관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몸싸움이 없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넘어지는 선수가 여러 명 나타났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아들레르 아레나는 대회 개막 전부터 이상화(25·서울시청) 등 선수들이 줄곧 얼음이 좋지 않다고 말해왔다.

상태가 균일하지도 않아 한국 대표팀의 케빈 크로켓 코치는 "이상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13일 열린 여자 1,000m 경기에서는 이보라(28·동두천시청)가 넘어지며 완주한 선수 중 가장 낮은 35위(1분57초49)에 그쳤고, 독일의 모니크 앙게르뮐러도 빙판에 나뒹굴어 결국 실격됐다.

당장 경기를 앞둔 '차세대 여왕' 심석희(17·세화여고) 등 쇼트트랙 대표팀은 물론 팀추월 등을 남긴 스피드스케이팅, '여왕' 김연아(24)를 필두로 한 피겨스케이팅 대표팀에 '얼음 적응'은 메달 색깔을 좌우할 수도 있는 요소로 떠올랐다. /소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