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 정상에 올라 한국 쇼트트랙의 '금메달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여자 계주 대표팀은 언니·동생 사이의 끈끈한 믿음으로 엮인 최강의 팀워크를 자랑한다.
결승 멤버인 박승희(22·화성시청)-심석희(17·세화여고)-조해리(28·고양시청)-김아랑(19·전주제일고)의 '최강 조합'부터 준결승에서 활약한 공상정(18·유봉여고)까지, 선수들은 최대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며 완벽한 '신구 조화'를 이뤘다.
'맏언니' 조해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오랫동안 국내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중심을 지켜 온 선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없이 귀국하는 등 여자 쇼트트랙의 침체기에 활약한 탓에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다.
후배들의 성장으로 오랫동안 기다리던 '강호'의 위상을 회복한 이번 대회에서는 애초 계주 멤버로만 나선 탓에 다시 한 번 관심이 그를 빗겨갔다.
하지만 1,500m 준결승에서 김아랑을 철저히 도우며 희생한 레이스에서 보이듯 조해리는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대표팀의 기둥이다.
조해리가 오랫동안 외롭게 지키던 짐을 나눠 진 선수가 박승희다.
밴쿠버올림픽에서 팀의 막내이던 박승희는 이후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서는 등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이번 대회 500m에서 16년 만의 동메달을 따내 대표팀의 메달 물꼬를 텄고, 오른 무릎 부상에도 다시 경기에 나서 팀에 투지를 불어넣은 주인공이 박승희다.
차분한 어조로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박승희는 조해리에 이어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내기에 손색이 없다.
4년 전 밴쿠버에서는 아쉽게 금메달 없이 돌아왔지만, 소치올림픽에서 정상에 서면서 묵은 한도 풀어냈다.
박승희의 한을 풀어 준 '에이스'는 단연 겁 없이 성장한 동생들이다.
가장 중요한 2번 주자로 나선 심석희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국내 여자 쇼트트랙 선수 중 드물게 큰 키(173㎝)라는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심석희는 체력과 기술, 근성까지 갖춰 전이경·진선유의 뒤를 잇는 '차세대 여왕'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선수다.
2012-2013시즌부터 월드컵 시리즈에서 빼놓지 않고 최소 1개 이상의 금메달을 수집해 어린 나이에도 이미 세계적인 선수들을 압도할 기량을 자랑했다.
심석희는 앞서 1,500m에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으나 경험 부족 탓에 저우양(중국)에게 막판 추월을 허용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잠시 아쉬움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심석희는 언니들과 함께 힘을 모아 치르는 계주에서 꿈꾸던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500m에서의 아쉬움을 바로 성장의 자양분을 만들 수 있는 승리욕을 갖춘 선수인만큼, 남은 1,000m에서 2관왕 등극을 기대해볼 만하다.
김아랑과 공상정이라는 또 다른 동생들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부터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아랑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올 시즌 월드컵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일취월장한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예다.
네 번의 월드컵을 통틀어 개인 종목에서만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따내 심석희의 뒤를 받치는 든든한 '2번 에이스'로 성장했다.
김아랑이 성장하면서 심석희가 자극받고, 다시 이에 김아랑이 반응하는 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대표팀 최광복 코치의 설명이다.
공상정은 한국 선수들이 취약한 단거리 종목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다.
스타트가 좋고 순간 가속도를 붙이는 능력이 빼어나 앞으로 500m에서 중국세와 맞붙을 미래의 에이스로 꼽힌다.
올 시즌에는 계주 멤버로만 선발돼 자신의 역량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소치올림픽 계주 준결승에서 팀의 승리에 공헌하는 등 크게 눈에 띄지 않더라도 제 몫을 철저히 해주고 있다.
대표팀의 든든한 지붕인 조해리와 이를 떠받치는 대들보 박승희가 중심을 잡고, 그 아래에서 심석희·김아랑·공상정 등 신예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표팀은 완벽한 신구조화 속에 가장 원하던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