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 이승훈(26·대한항공)이 또 한 번 올림픽 무대에서 값진 도전의 열매를 수확했다.
이승훈은 2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결승에서 후배 주형준(23·한국체대)·김철민(22·한국체대)을 이끌고 투지 넘치는 레이스를 펼쳤다.
비록 세계 최강 네덜란드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은메달에 그쳤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는 충분하다.
4년 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장거리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소치에서는 팀추월 사상 첫 메달을 따낸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이룬 일이지만, 공로의 절반 이상은 이승훈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2006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팀추월에서 한국이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것은 이승훈이 등장한 2010 밴쿠버에서였다.
이후 팀추월이 한국의 전략 종목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배경에도 세계무대에서 장거리 정상을 넘보는 이승훈이라는 에이스가 있었다.

실제로 경기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승훈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
8바퀴를 도는 팀추월에서 이승훈은 가장 마지막 주자로 출발해 3바퀴째부터 선두로 나서 전체 레이스의 절반인 4바퀴를 연달아 가장 앞에서 이끈다.
팀추월이라는 종목의 묘미는 계속 주자를 바꿔 가며 선수들이 체력 부담을 나눠지는 데에 있다.
가장 앞서서 레이스를 이끄는 선수는 공기의 저항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기에 체력의 부담이 크다.
반대로 뒤에서 달리는 선수들은 앞선 선수가 갈라 놓은 기류의 영향으로 오히려약간의 뒷바람을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팀추월 선수들은 앞장서서 달릴 때 최대한의 힘으로 속도를 끌어올려 이끌고, 잠시 후 가장 뒤로 돌아가 체력을 비축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이승훈은 가장 부담 많은 자리에서 경기의 절반을 쉴 새 없이 버티며 레이스 중반에 경쟁 팀과의 기록 차이를 줄이거나 전세를 뒤집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전략을 짠 것은 아니었다.
셋 중 가장 스타트가 좋은 주형준이 첫 바퀴에 앞장서고, 이어 속도를 붙일 줄 아는 김철민이 두 바퀴를 끈 다음 이승훈은 3∼4번째 바퀴를 책임지곤 했다.
이 전략으로 남자 팀추월 대표팀은 올 시즌 1차 월드컵과 2차 월드컵에서 연달아 네덜란드, 미국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그러나 5바퀴째부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메우지 못하자 4차 월드컵에서 이승훈이 중간의 네 바퀴를 쉬지 않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바꿔 미국을 제치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승훈은 체력 부담이 강한 중책을 완벽히 수행해 8강, 4강에서 연달아 역전 레이스를 선사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최강 네덜란드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이승훈의 도전은 또 한 차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