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신소설 책 6개 표지 (사진 왼쪽부터 혈의누, 모란병, 쌍옥적, 홍도화, 박연폭포, 서해풍파.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이인직의 '혈의 누' 등서 부산보다 많은 총 17편에 등장
연관 단어 '인천항·화륜선·막벌이·감리서·색주가·경인철도…'

'경인철도 설정' 글의 배경 경성서 인천으로 바뀌는 계기
부두노동자·화개동 공창 소재 '개항의 그늘' 엿보여


20세기 벽두부터 새롭게 등장한 신소설 속 인천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소설 속 '인천'의 연관 단어는 '인천항', '화륜선(火輪船·증기선)', '개화(開化)', '막벌이·품팔이', '미국회사', '감리서(監理署)', '색주가(色酒家)집' '경인철도', '해관(海關)', '상선회사(商船會社)' 정도다.

이는 신문물, 신식제도로 대변되는 개항기 인천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제 침탈로 파탄 난 조선사회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소설은 개화기 정치·사회·문화의 급격한 변화상을 담아낸 서사양식 가운데 하나다. 특히, 계몽적 성격을 보였던 신소설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면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대단했다.

문학평론가 이경훈이 1905년부터 1919년 사이 발간된 서사물(신소설, 전기, 토론체, 몽유담 등) 속 어휘를 정리한 '한국근대문학풍속사전'을 보면, 전체 130편의 서사물 중 인천이 등장하는 작품은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를 비롯해 총 17편이다. 이는 인천보다 먼저 개항한 부산(13편)보다도 더 많다. ┃표 참조
 

신소설이 지어진 시기나 신소설 속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대 무렵이다. 이들 소설 속의 인천 나들이를 떠나보자.

# 인천항 그리고 경인철도

"옥련이가 교군(가마꾼) 바탕을 타고 인천까지 가서 인천서 윤선을 타니…."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인천은 이같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인천'은 주인공 옥련이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입양돼 평양에서 오사카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다. 이후 인천은 개화기 조선의 관문으로 신소설의 단골 메뉴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엔 일본인과 중국인을 비롯해 미국 등 서양인까지 몰려들었고, 나라별로 거주지(조계지)가 설정됐다. 지금의 '차이나타운'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인천과 일본의 정기항로가 개설되면서 영사관과 상선회사, 무역회사가 인천에 들어섰다. 병원과 교회, 근대식 호텔과 식당도 생겼다. 자연스레 일거리를 찾으러 온 외지인들이 줄을 이었다.

바쁘고 활기찬 '인천항'의 표정은 '혈의 누'의 속편 '모란봉'에서 잘 나타난다.
 
▲ 개항기 인천을 드나들었던 '화륜선'은 1918년 인천항 1부두가 준공하기 전까진 지금의 중구 파라다이스 호텔(사진 오른쪽 아래) 인근 해상에 정박하거나 월미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임순석기자
"인천항 저녁 빛에 흑운 같이 검은 연기를 토하며 살같이 들어오는 화물선 화통 열어놓는 솔에 인천 상업계의 졸음을 깨트리는 어물전에 꼴뚜기 장사가 먼저 날뛰듯 밥장사나 하고 방세나 받아먹는 여인숙 반도들이 잔반의 배를 타고 정박한 화륜선에 들어가서 손님 마중을 하는데, 돈푼이나 잘 쓸듯한 일등실 손님 앞으로 몰려가서 여인숙에 갈 손님을 찾는다."

이수일과 심순애로 유명한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1913년)에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탐이 났더란 말이냐"는 명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원래 인천 만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이었다가 평양 대동강 부벽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인천은 전통적인 이별의 정한과는 거리가 먼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도시였기 때문인 듯하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신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때부터 소설은 '경인철도'라는 설정 하나로 소설의 배경을 경성에서 인천으로 바꿀 수 있다.

"네 병의 맥주를 다 마셨을 때에 기차는 이미 인천정거장에 당도하여 '인천, 인천'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 심천풍 '주'

신소설 속 인천과 오늘날의 인천은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바다가 땅으로 변하는 '팽창하는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개항장이라는 국제도시로서의 위치는 송도·청라·영종경제자유구역이 대신하고 있다. 인천항이 확장됐고 영종도엔 또 다른 대한민국의 관문인 공항이 들어섰다.

규모야 어찌됐든 인천은 대한민국을 찾는 이에게 첫 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안겨주는 도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 인천역.
# 개화의 그늘

신소설 속 인천은 늘 활력있는 도시로만 그려지진 않았다. 개화의 그늘에서 시름하던 사람들이 머물던 곳도 바로 인천이었다.

"사위는 미국을 갔다하나 진적한 소문은 못들었고…(중략)…암만해도 그 (회사) 본점이 인천에 있다니 거기 가서 좀 물어보려고…."

육정수의 작품 '송뢰금'은 러일전쟁 무렵 주인공 계옥이 '졸연이 일어난 풍파'로 인해 하와이 이민을 떠난 아버지 김 주사를 찾아간다는 내용의 미완소설이다. 원산에 살던 계옥이 하와이에 있는 아버지의 소식을 접한 장소는 다름 아닌 인천의 한 '미국 회사'였다.

1902년 12월 최초의 하와이 이민선이 출발한 장소가 바로 인천이다. 육정수는 실제 미국인 데쉴러가 1902년 인천 내동에 세운 이민회사인 '동서개발회사'에서 통역관 및 사무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하와이 이민노동자의 고된 생활을 소설로 전할 수 있었다. 송뢰금에서 계옥의 어머니는 이 미국 회사를 '사람 팔아먹는 놈'이라고 표현한다.
 
▲ 개항기 인천이 우리나라 관문 역할을 하면서 인천항에 본점을 둔 해운회사가 생겨났다. 사진은 1883년 세워진 일본우선회사로 지금은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화된 이후로 일제 식민지배가 가속화되면서 전통농업사회도 파탄이 난다. 농촌 사회의 잉여 인력은 인천항 부두노동자가 된다. 이 같은 모습은 이해조 소설 '빈상설'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원래 돌이가 각집 별배(別陪·하인)로 월급 푼을 얻어먹고 지내더니 개화된 이후 재상들도 구종하나 데리기도 하고 아니 데리기도 하여 생애 길이 뚝 끊어지니, 막벌이하기로 나섰는데…, 차라리 낯모르는 곳에 가 품팔이를 할 작정으로 인천항구에 와 있던 터이라."

항만과 철도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인천 화개동(지금의 중구 신흥동)을 중심으로 유곽이 자연스레 발달했다.

이해조의 또 다른 작품 '모란병'은 주인공 금선이 인천 화개동 색주가(色酒家)집에 팔려가는 장면을 통해 당시 활기찼던 개항장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색주가집에서 도망친 금선을 오히려 나무라는 인천 감리의 모습은 관공서의 부정부패가 심상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화개동 색주가집은 일제시대 총독부로부터 '공창'으로 인정받았지만, 해방 이후 폐쇄돼 인근 숭의동에서 '옐로 하우스'란 별칭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글 =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