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얼굴 바라보는 것은
말 걸기전 적극적인 배려
상처받은 마음 드러나는 것
주위에 소외된 이웃
그냥 지나치지 말고
관심 있게 봐주는게 최선


타인의 얼굴을 일분만 봐 줘도 평소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남의 얼굴을 시늉만 하거나 물건 보듯 대충 본다. 잘났다 못났다는 식의 이분화, 피부가 좋다 나쁘다는 식의 물질화, 얼굴보기가 그저 단순하고 피상적이며 도구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얼굴을 진정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상대의 힘들고 어려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지난달 경기도의 공무원 직무연수 특강에서 이 얼굴보기 실험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연수 중 어느 정도 말을 튼 옆 동료의 얼굴을 잠시 보는 활동이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지만 이내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말을 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만으로 동료를 바라보기로 했다. 마주보는 사람에게 혹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넓고 푸근하게 다가가기로 했다.

몇몇 짝들이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배가 고픈 듯하다, 피곤해 보인다, 눈이 참 맑아 보인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착해 보인다는 식의 소감이 나왔다. 이 얼굴보기 탐색 결과가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수강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건인 듯했다. 실제 얼굴보기는 마술과 같다. 아마 제대로 동료의 얼굴을 깊게 자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인간관계는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한 수강생이 복도까지 따라나와 말을 건다. 가족들 하고의 불편한 상황을 진지하게 묻는다.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느낌, 아이도 자기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양심이나 동정심을 발동시키려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볼 줄 아는 태도와 어느 정도의 시간만 내면 된다. 동정심이나 양심은 의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냉정하게 얼굴만 돌리지 않으면 된다. 경청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긴급한 일은 관심을 갖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한 말에는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돌아앉아 고개만 끄덕이면 제대로 된 응답이 아니다. 얼굴은 보기만 해도 문제가 해소된다. 굳이 내가 힘들게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

얼굴보기를 낯선 사람에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직장이나 이웃에게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도 아니고 괜히 말을 걸었다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지난달 26일 서울시 송파구에서 생활고 비관으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비극 기사에는 사회안전망의 한계와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말하길 그들이 직접 복지신청을 하지 않았고 이웃에서도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없었다고 한다. 힘들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세 모녀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 그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을까. 얼굴은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도움의 말 이전에 그들의 얼굴을 세심하게 볼 수만 있었다면 그들의 숨은 눈물, 감춰진 속사정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초수급자 신청을 받고 지원 요청을 아무리 많이 홍보하더라도 정부기관에서 찾아낼 수 없는 이웃의 숨은 눈물은 있게 마련이다. 이 눈물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염려이다. 얼굴 보는 일은 말을 걸기 전에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배려의 자세이다. 가족이나 이웃 모두에도 얼굴을 보는 것만큼 윤리적인 일은 없다. 얼굴은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곳이라고 한다. 상처받은 마음이 방어 장치 없이 드러나는 곳이다.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데에는 얼굴보기가 최선일 것이다. 나 자신이 힘들 때도 누군가 또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