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촬영
어린 배우 수준급 연기 '감동'
겁나고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
쿨한 엄마로 확대없이 잘풀어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드라마에선 20대 청춘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들이했다. 이쯤 되면 아마 제2의 전성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배우 김희애(47) 얘기다.

"누군가 제8의 전성기라고 그러더라고요. 운동도 하고 피부관리도 받지만 제 얼굴 보면 세월이 어디 비켜가겠어요? 늘 마지막 촬영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촬영에 임해요."

영화 '우아한 거짓말'로 스크린에 복귀한 김희애는 4일 서울시 중구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로 그의 모습을 보는 건 문성근과 호흡을 맞췄던 '101번째 프로포즈'(199) 이후 21년 만이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 김희애는 영화를 보고 나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눈물이 별로 없는' 그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 찍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연기해낼지 걱정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너무 잘하는 거예요. 아이들의 연기는 세계적 수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보통 제 연기를 보느라 영화에 잘 몰입하지 못하는데, 아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갑자기 무슨 후폭풍 같은 감정이 일었어요."

'완득이'의 이한 감독과 김려령 작가가 다시 한 번 손 잡고 만든 '우아한 거짓말'(13일 개봉)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한 소녀가 자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족과 소녀 주변의 이야기가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 자살한 소녀 천지(김향기)의 엄마 현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며 "겁도 나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원작 소설에)있었다"고 말했다.

"'완득이'도 그랬어요. 소재는 어두웠지만 영화는 어둡지 않았죠. 실제 삶에서 설사 어두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성숙해져야 하는 거잖아요. 영화가 어두운 부분을 확대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김희애는 '쿨한' 엄마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런 '쿨함'과는 거리가 있다. '공부 안 하고 컴퓨터하고 있으면 불안해지고, 자꾸 엄마로서 할 일을 못 한다는 죄책감'이 엄습하는 그런 평범한 엄마다.

"아이들과는 떨어져 지내며 자주 안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웃음)"

오랜만에 영화 촬영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속전속결을 생명으로 하는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는 "너무 공을 들여서 찍어 심리적 압박이 더 컸다"고 한다.

그는 "여유있게 촬영을 할 수 있으니, 연기하는 데 드라마보다는 섬세함이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영화뿐 아니다. 김희애의 활동 영역은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든다. '꽃보다 누나'에 참여하게 된 건 '꽃보다 할배'를 보고 선배들이 예능의 전면에 나서는 게 반갑고 부러워서다.

"드라마와 영화감독이 점점 젊어지고 있어요. 감독이 젊으니 스태프들도 젊어지게 마련이죠. 그러다 보니 나이 든 분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그런 점에서 기형적이에요. 어른들이 나올 수 있으면 얼마든지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촬영을 마친 그는 오는 17일부터 JTBC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 '밀회'에 출연한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공무원 준비생으로 나와 감초 역할을 하는 유아인과 함께다.

우아하고 세련된 커리어우먼 여성과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천재 피아니스트의 사랑을 그린 멜로 드라마다.

영화부터 드라마 예능까지 누비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김희애. 전성기를 맞은 기분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길게 가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요. 요즘 자극적인(익사이팅한) 건 무서워요.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기 때문이에요. 담담한 게 좋아요. 예를 들어 화려한 여행지보다는 조용한 시골이 좋고, 화려한 장미보단 길가의 민들레나 코스모스 한 송이가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