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일 이틀이 지난 9일 수험생과 고교 진학상담 교사들은 여전히 어
려운 수능 '충격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당장 대학 면접.논술시험 준비, 원서작성 등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상상
을 초월한 최악의 수능 가채점 결과에 의욕을 상실한 채 어찌해야 할 바
를 몰라하며 일선 교실의 수능 후유증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시내 대다수 고교가 수능후 수험생들의 이탈을 막기위해 이날부터
졸업고사를 실시했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은 서로 별다른 대화
도 나누지 않은 채 침체된 분위기에서 고교 마지막 시험에 임했다.
담임교사들은 실망한 학생들이 자칫 졸업시험을 포기할 것을 우려, 전날
밤부터 학생과 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내신성적도 중요하다'며 시
험을 볼 것을 당부한 때문에 이날 서울시내 고교들에서 결석자는 거의 없었
지만 평소 시험 때와 달리 학급마다 지각자들이 속출해 학교당국을 긴장
케 했다.
이날 고교 3학년 담임교사들은 아침 일찍부터 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진로
대책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고, 현재로서는 정
신적 대공황 에 빠진 학생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독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고 입을 모았다.
◆ 침울한 교실 = 서울 시내 G고교의 경우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졸업시험
을 보기 위해 자기자리를 지켰지만 시끌벅적하던 평소와는 달리 급우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또 학급마다 5-6명씩 지각자가 나왔다.
시험감독으로 들어온 이 학교 고3 교사들은 학생들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될 수 있는 대로 이번 수능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며 다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너희만 시험을 잘못 본 것이 아니다'고 위로했지만 실망한 학
생들의 사기를 돋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 강북 K고의 경우 전날에 이어 9일에도 정부의 수능정책을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일부 학생들이 '이 정도 점수를 갖고 어느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고 울먹여 교사들을 난감하게 했다.
강남 C고교의 한 고3 담임교사는 '점수대가 예상보다 너무 많이떨어져 학
생들을 물론 교사들까지도 가라앉은 상태'라며 '점수 하락이 모든 학생들
의 공통 현상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이를 현실로 받아들지 않
고 있다'고 말했다.
◆ 교사 불만 팽배 = 일선 고교교사들의 불만도 팽배하다. 교사들은 학생
들 사이에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불안감이 분노와 허탈이 만연돼
있어 당장 논술 및 면접에 대한 대책을 학생들과 논의해야 하지만 현실적
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무성의한 정부의 입시정책이 학생들의 좌절케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서울시내 한 고교 3학년 담임교사는 '솔직히 이번 시험은 말이 안된다.
자율학습과 모의고사를 없애 놓고 어떻게 이런식으로 문제를 낼 수 있느
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강남 H고교의 한 교사 역시 '이해찬 1세대로 쉽게 공부하게 만들어 놓고
변별력을 유지한다며 어려운 문제를 내놓다니 어이가 없다'며 '졸업고사가
오늘 시작됐지만 학생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충격을 받은 일부 학생들이 자칫 일탈 행동을 하지 않을까 우
려된다'고 걱정했다.
◆ 수능충격 극복 대책 =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이창화 교수는 '수능 충격
이 가족전체로 번져 수험생들의 불안이 극대화될 수도 있다'며 '수험생들
은 다른 사람도 같은 상황이라는 현실을 냉철히 인식히 시급히 불안감을
떨쳐내는 것이 대학합격의 지름길이며 가출 등 돌출행동은 금물'이라고 당
부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