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수화기에서 커다랗고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하자 금세 목소리가 작아지며 “특별한 것이 없는데, 뭘 하시는 건지….” 어쨌든 오지 말라고는 안해 화성시 향남면 장짐리 발안성당 뒤에 있는 황인숙(48·여)·이상옥(57)씨 부부의 집을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겨울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29일이었다.
부부의 보금자리는 지은 지 꽤 돼 보이는 빌라 지하였다. 부부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밖에 이웃이라는 아주머니들이 3명이나 와서 취재진을 반기며 커피도 타주고 이야기를 거들기도 하면서 10평 남짓한 공간을 꽉 채웠다.
황씨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말문을 열었다. “저 경인일보에 난 적 있어요. 장애인체육대회에서 메달을 받았거든요. 올해도 받았고 그전에도 계속 받았죠. 체육대회에 나가면 다른 선수들이 '올해 또 나왔느냐'면서 싫어하는 눈치를 줘요. 제가 팔힘이 좀 센가봐요.” 포환던지기, 창던지기, 100m휠체어마라톤 등 두루 상을 휩쓸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황씨는 21살에 건물옥상에서 떨어져 척추신경을 다쳤다. 하반신이 마비됐고 그때 치료가 완벽하지 않아 골수염이 있는 줄도 모르고 7~8년동안 뼈를 찌르는 것같은 고통을 받다 30%의 회생가능성 속에서 9시간 수술을 받고서야 나았다. 지금은 당뇨가 있긴 해도 생명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1년에 한 두 번은 입원을 하고 매달 아주대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결혼은 꿈도 안꿨죠. 사고나고 2~3년은 죽을 생각밖에 없었어요. 독기만 남아서 어떻게 하면 죽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괴롭힐까 그랬던가 봐요. 수면제도 먹고 대소변도 싸버리고 별짓을 다했죠. 가족들은 저 때문에 성당에 나가 영세를 받았지만 저는 그것도 거부했었어요.”
그러나 황씨가 자신의 변화에 적응하는 순간이 왔다. 한 수녀가 찾아와 성가를 한 곡 불렀는데 그만 독기가 모두 녹아내린 것. “눈물이 쏟아졌는데…음, 아주 뜨거운 눈물이었어요.” 그리고는 곧장 사고 전 황씨의 건강한 정신을 되찾았다. 남동생의 결혼에 장애인인 자신이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보고 “자립하자”는 생각을 굳혔다. 자신의 불행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가족에게 큰 피해가 됐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서울로 가서 명동성당 부근 수예점에서 일했는데 수예점이 문을 닫자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전에 배웠던 미용기술을 되살려 동네에서 미용 일을 했다.
남편 이씨를 만난 것은 29살때. 9살 연상의 남편은 가전제품 수리를 다녔는데 언어장애가 있고, 한쪽다리가 성치 않았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남편의 전 부인이 초등학교 5, 3학년인 두 아들까지 버리고 가출해버린 것이 마음에 못내 걸렸다.
“저는 몸이 이래도 좋다는 남자들 많았어요. 제가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남편의 상황은 저를 필요로 했고 아이들과 남편도 모두 착해서 더욱 마음이 갔어요.”
황씨는 결혼을 하고 놀랐다. 결혼 전에는 '내가 어떻게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지레 포기를 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더란다. “지금은 억울하죠. 이럴 줄 알았다면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하는 건데.”
다만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렵다며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옆자리의 남편 이씨도 동감의 눈빛을 보인다. 그래서 결혼에 자신없어 하는 장애인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황씨의 몫이다. 벌써 세사람이 황씨의 살림경험과 조언에 힘을 얻어 결혼을 했다.
벌이는 짧고 병은 길어 아이들 학교보내며 집장만하려고 안먹고 안쓰고 억척스레 모은 돈이 병원비로 들어갔는데 남편이라서 그 고생을 함께 해줬을 것이라고 한다. “자식 밥은 서서 먹어도 남편 밥은 앉아서 먹는다잖아요?”하자 남편은 어눌한 말씨로 “이 사람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것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부부는 결혼 20년이 다돼 가지만 아직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결혼식은 경기도신체장애인복지회가 해마다 여는 장애인합동결혼식으로 올렸고 신혼여행도 안갔다.
하지만 살림이야기가 나오자 황씨는 에너지가 넘쳤다. 이웃들이 행주처럼 깨끗한 걸레를 눈짓으로 가리킨다. “우리보다 더 잘해”하면서. 흰빨래는 손으로 하고 색있는 빨래만 세탁기를 쓴다는데 이불빨래도 척척이다. 황씨가 내놓고 자랑을 했다. “빨래 널고 걷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장애인들에게 이 일은 참 어렵거든요. 늘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빨래 널고 걷는 것을 부탁하다가 이 방법을 개발했죠.” 황씨가 시범을 보였다. 옷걸이에 넌 빨래를 옷걸이 집게를 단 긴 막대기에 얹어 욕실 빨랫대에 거는 방법이다.
어렵게 번 돈으로 학원비 줬더니 당구장에 쏟아부어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했던 큰 아들은 건축사가
난 당신의 다리되고 당신은 내 입이되고
입력 2001-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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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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