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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
생활고 못견뎌 잇단 자살하는
안타까운 현실
사회 기득권층들 국민에 대한
책임감과 도덕성으로
사회정의 실천 앞장서야
필자가 연출했던 아서 밀러의 희곡 '전무송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연극에 있어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힘의 양극화와 논리의 모순 그리고 대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힘든 삶을 보편적 가치로 잘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194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일을 좋아하고 아들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는 영업사원인 주인공 윌리로만이 나이 들어 업무성과를 못 내고 결국에는 젊은 사장에게 모욕을 당하며 해고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거기에 약간의 치매 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변변한 일없이 놀고 있는 두 아들 비프와 해피와의 심각한 갈등까지 겪어내며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파국으로 치닫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어 죽음으로 아들에게 보험금을 타도록 하는 것이었다. 부인 린다가 남편의 영정을 부여잡고 중얼 거린다. "여보 오늘 집 대출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네요." 이 비극을 연출하면서 작업 내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이야기나 별 차이가 없기에 그랬다.
가족을 위하여, 먹고살기 위하여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이 이야기 아니 이보다 훨씬 슬픈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0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가 자기 아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기 위하여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은 세일즈맨의 죽음보다 더 많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달 26일에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이라는 너무나 안타깝고 그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생활고로 목숨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집주인에게 폐를 끼칠 것을 염려하며 미안해했고 그들에게는 엄청난 돈이었을 70만원을 봉투에 넣어 마지막 월세를 감당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찌 설명이 되어야하는 건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잘 모르겠다. 국민행복시대라는 우리 하늘아래 사회 안전망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구원의 손길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세분의 아까운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 후 열흘도 안 되는 시간에 베르테르 효과까지 겹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을 내려놓고 있다. 노고산동의 노동자가 100만원을 옆에 두고 화장해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고, 지인에게 전기세를 좀 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차안에서 자살을 한 울산의 윤모씨도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연락도 되지 않는 가족이 행정상에 발견되어 부양의무제에 걸려 탈락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보장 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나타나는 지점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 이후 모든 언론, 사회단체, 정치권, 일반 국민들까지 불편하고 부당한 제도를 말하며 부양의무제의 문제점, 수급자신청절차의 어려움 등을 해소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기초생활보장의 혜택을 받는 제도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제는 그로 인해 부정수급자를 골라내는 득보다 가족이 있어도 경제적 도움을 못 받는 훨씬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하는 실이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있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문제만 생기면 위정자들은 윽박지르지만 인구 1천명에 한명 정도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숫자를 본다면 얼마나 생색내기용 멘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일들이 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 기득권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정신의 부활이다. 즉 사회 기득권층들이 국민에 대한 높은 책임감으로 도덕성을 앞세워 사회에 정의를 스스로 실천하여야 한다. 로마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의 자부심으로 스스로 전쟁터에 나갔으며 기부문화를 당연한 책임으로 여겨 재산을 기부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이 정신은 세계 선진국에 퍼져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지도층들이 지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사회 기득권층들이 군대를 기피하고 기부는커녕 부의 대물림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금의 권력으로 골목상권을 내몰고 사회의 어두운 곳을 외면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한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지속된다.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