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들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던' 한 사나이에게 열광하고 있는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 타락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설계한 '고려가 버린 아웃사이더'에게 왜 중장년들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걸까. 불황으로 숨도 못 쉬던 서점가 서가에도 정도전 일색이다. '소설 정도전'에서부터 '정도전 연구'에 이르기까지 정도전과 관련된 서적만 50권이 넘는다. 방송계나 출판계 모두 정도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학자 정도전이 역심을 품는 개혁가가 된 것은 이인임과의 불화로 나주로 유배를 떠나면서부터다. 9년이라는 길고 길었던,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긴 유배생활이 없었다면 조선정신의 바탕이 되었던 위민의식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무려 519년 동안 망하지 않고, 도도한 강물처럼 멀리 멀리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 초석을 다진 조선의 건국이념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선이 500년만에 '망했다'고 하지만 조선은 500년동안 '망하지 않은' 보기드문 왕조국가였다.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왕이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조선이었다. 왕의 독단을 거부하는 신하가 있었고, 왕의 행차를 백성이 꽹과리를 치면서 막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왕에게 호소하는 이른바 '격쟁(擊錚)'이 가능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겪고도 무려 280년이나 더 유지된 나라가 조선이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은 검소하고,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했다. 조선 몰락의 원인은 정조대왕 사후 60년간 이어진 세도정치였다. 무려 60년 세도정치에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인본주의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왕들이 백성에게 끼쳤던 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세도정치가 끝나고 50년이 더 지난 후에 조선이 망했으니 도대체 그 끈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정도전이 만든 조선건국 이념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백성'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정도전의 이념이 염증나는 지금 우리의 정치와 맞물려 이 드라마에 중장년 남성들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이다. 성종때 완성한 경국대전이라는 위대한 법전은 정도전이 만든 '조선경국전'이 바탕이 되었다.
'조선 경국전'은 정도전이 500년 후를 내다본 조선의 근본이었다.
새정치를 표방하면서 '100년이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사실상 합당을 선언했다. 겨우 100년을 내다본 그 였지만 그것조차 포기하고 날름 민주당의 품에 안겨버려, 안철수 새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을 멘붕에 몰아 넣었다. 차라리 100년정당 운운하지 않았다면 배신감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책사라는 윤여준 전 장관이 '이 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정도의 화법도 국민의 분노에 미치지 못한다. 따지고보면 신당 창당 선언이후 정도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선 것이 괜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양대 정당,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륜은 1792년, 조선에서 위대한 왕 정조로 인해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고 있던 그 먼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장장 200여년을 흘러와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다. 엘 고어가 2000년 대선에서 총 투표수에선 부시보다 54만3천895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 이를 깨끗하게 승복한 것도 깊은 강처럼 흘러왔던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 때문이다. 거저 얻어진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의 이념을 만든 정도전의 정치사상이 조선을 얼마나 깊은 강으로 만들었는지, 창당과 합당을 식은죽 먹기로 해 치우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