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학년도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10일부터 전국 192개 대학에서 일제히 시
작됐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지난해에 비해 수험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폭락했고, 수능 전국 석차가 일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어느 해보다 애
를 태우고 있다.
원서를 사들고 나서 ‘눈썹 끝이 타들어가는 심정’ 이라며 초조함을 호소
한 어머니와, 수험생 자녀가 일찌감치 수시모집에 합격해 느긋하게 ‘표정
관리’ 에 들어간 어머니 등을 모시고 원망과 한탄, 희망과 기대 등을 들어
봤다. 이 자리에는 고 3 담임 선생님 1명과 입시학원의 전문강사 1명도 참
석했다.
#요즘 입시 너무 힘들어요
-올해 수험생은 ‘이해찬 1세대’ 라고 하더니 시작부터 끝까지 실험만 당
하다 끝나는 느낌입니다. 전국 석차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대학 교수 한분
이 만들었다는 복잡한 ‘석차 산출 공식’ 을 놓고 아이들과 머리를 싸매
고 있지만 전자계산기를 가지고도 계산이 안되네요. (한숨)
-올해 고3 엄마들은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해찬들 고추장만 봐도 고개를 설
레설레, 손사레를 친다잖아요. 애들이 자신감을 잃고 기도 많이 죽은 느낌
이에요.
-모의고사도 못보도록 무장해제 시키더니 결국 어려운 난이도로 확인사살시
킨 셈이죠.
-고 3 담임은 장가갈 수 있는 날이 수능 시험 직후 밖에 없습니다. 수능날
한창 막바지 결혼 준비 때문에 집안 어른들을 뵙고 있는데 휴대폰이 쉴새없
이 울렸습니다. ‘어쩌면 좋으냐’ 고 무작정 우시는 어머님들을 달래는
게 아이들 달래는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대학별 입시요강이 너무 복잡해 전문학원에서 상담지도를 한 선생님들도
개별대학의 입시정보를 정확히 모릅니다. 교사도 모르고 학생도 모르면서
날짜 닥치면 원서 넣는 게 요즘 입시죠. 옛날에는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
고 했지만 요즘 학원가에서는 운구기일(運九氣一) 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기본만 가르치고, 심화학습 보충학습은 애들 보고 알아서 하라
는 건데, 그게 고등학생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생긴 것 같아요.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학교 들어갈 땐 예비고사와 본고
사가 있어서 변별력에도 큰 불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고3 때만 정
신 차리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었잖아요. 요즘 애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제
도권 교육에 묶이는 것 같아요.
-뭐, 그때라고 다 좋았겠어요. 엄마들 욕심이 갈수록 세지니까 이렇게 됐겠
지요.
-과외 싫다고 캐나다 이민 갔는데, 거기서도 아들딸들한테 영수 과외 시키
는 게 한국 학부모래요.
#테러 전쟁 방불케 하는 입시 전략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중요한 것처럼 요즘 고3 엄마들은 아얘 ‘전
략가’ 가 돼야 해요. 대학별로 영역별 가중치가 얼만지, 과탐(과학탐구),
사탐(사회탐구) 점수는 얼마나 필요한지 눈이 빠져라 살펴야 합니다. 요즘
원서 접수는 신경쓸 게 한두개가 아니어서 종합예술 이라고들 하잖아요.
-대학별로 입시가 세분화되니까 ‘틈새 과외’ 도 늘었어요. 15일 짜리 단
기 논술과외에, 각종 면접 대비 3∼4일 짜리 집중 과외, 이것 저것 다 묶어
서 해주는 패키지 과외, 벼라별 게 다 있어요. 막판이라 가격도 만만찮아
요.
-영어 특기자로 서울 중상위권 대학 수시모집에 들어간 학생의 경우 토익
토플이 거의 만점이에요. 영어도 전략입시과목 이 되니까 별 희한한 공부법
이 다 나오더군요. 회사원들은 몇 달씩 외국어학원 다니면서도 영어 점수
올리기가 어렵잖아요. 하지만 요즘 입시 학원은 토플 토익 시험 유형을 철
저히 해부해서 가르치니까 영어도 어느 정도 암기과목처럼 돼버린 것 같아
요.
-학부모들도 전쟁이지요. 대학 인터넷 사이트 들어가서 입학 정보 Q&A 코
너 챙기는 게 엄마 일이 됐어요. 웹 서핑은 옛날 학부모들은 생각지도 않
던 건데…. 인터넷 실력은 늘었지만, 참 별 걸 다하는구나 생각 들 때가 있
어요.
#1년 내내 조마조마하는 인내심 원서 접수
-5월에 대학들이 수시모집을 시작하고 2학기인 8,9월에 한 번 더 수시모집
이 있어요. 11월에 수능을 보고 정시모집을 하기까지 사실상 1년간 원서 접
수 에만 매달려요.
-수시모집에 들어가면 반 분위기가 달라져요. 아이들은 일단 원서를 사들
고 온 대학을 ‘모교’ 라고 불러요. 수시모집으로 예비대학생이 된 아이
와 수능 준비에 필사적인 아이들이 한 반에서 수업을 하는 거죠.
-일부러 결석한 아이들도 친구들이 수시모집 면접 갔는데요 라고 해주면 무
사 통과래요. 고3 1년간은 공부한다기 보다 입시 준비하느라 시간 다 보내
는 거죠.
-1년간 들어가는 원서 값만 해도 보통이 아니에요. 5월부터 수시모집 준비
하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하도 들어갈 게 많아서 책이 한 권씩 만들어집
니다. 전형료는 학교별로 6만∼7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