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배 시인
이런저런 이유로 변해가는
고요한 안성 금광호수변
박두진의 고향
따스하고 사람 냄새 살아있는
유토피아적 이미지 가득한
자연친화적 변화 바란다


어느 시대건 유민의 역사가 있었다. 유태인처럼 하나의 민족이 대륙을 떠도는 민족사로서의 유민사가 있고 한 가문이 부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족사로서의 유민사가 있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면서 이제는 한 개인이 고향에서 흩뿌려져 타향에서 생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개인사로서의 유민사가 있다. 태어난 곳에서 일생을 보내다 생을 마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럴 수만 있다면 큰 축복일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간다. 결혼을 이유로, 취업을 이유로, 가난을 이유로, 혹은 새로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온 고향은 눈물겹고 아련한 공간이다.

시인들에게도 유년의 아름답고 아련한 기억으로의 고향이 있다. 많은 시인들이 고향을 노래한 시편을 남기고 있다. 고향이 시인의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며 아픈 가족사를 내장하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지만 고향은 그리움 이상의 의미 공간이다. 고향은 시인들에게 상실된 유토피아이며 복원될 수 없는 디스토피아의 의미를 가진다. 고향이라는 말이 불러오는 그리움과 서러움은, 이 유토피아적인 이미지와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의 충돌 때문일 것이다.

박두진의 시 '고향'은 유토피아적 이미지와 디스토피아적 이미지가 충돌하고 있는 문학공간을 보여준다. 첫행이 '고향이란다'로 시작되는 이 시편은 오래 떠나 있던 고향에 대한 상실감이 진하게 배어 있다. '고향이다'로 시작되지 않고 '고향이란다'로 시작되는 시편의 첫행이 불러오는 타자화되고 객관화된 고향은 디스피아적 이미지가 강해서 자조적인 분위기가 시 전편을 지배한다.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시인을 맞아준 것은 푸른 하늘 뿐 고향도 그를 본 듯 안본 듯 하여 서러움이 더하는 것이다.

박두진은 1916년 3월 10일, 안성시 봉남동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을 보개면의 동신리 고장치기라 불리는 평촌마을과 양복리의 양협마을에서 보냈다. 지금의 보개도서관이 서 있는 곳이 양복리이니 보개도서관에 혜산 박두진 자료실이 설치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서관 앞에 그의 시비 '고향'이 서 있다.

박두진은 젊은 날, 측량소와 경성부청과 금융조합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국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평생을 보냈다. 1946년 조지훈·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펴낸 이후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며 자연과 신의 영원성을 노래하다 1998년 9월 16일 영면했다.

안성의 금광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오흥리 현줄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앞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느티나무 맞은 편의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박두진의 말년 집필실인 '박두진 문학연구소'가 나타난다. 현판을 박두진 시인이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집필실 마당은 잔디가 깔렸지만 잘 관리된 것은 아니다. 그가 없는 집필실은 어딘가 쓸쓸하고 폐허같다는 느낌이 든다. 집필실에서 내려다보면 금광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는 하루 종일 금광호수의 물빛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호수의 물빛을 보며 생의 빛깔이 저처럼 바뀌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년에 이르러 수석에 심취했으니 집필실의 곳곳에 혹은 잔디마당 구석구석에 여러 점의 수석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고 수석들은 시인과 자연의 생명력에 대해, 혹은 신의 영원성에 대해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의 집필실을 나와 호숫가의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가다보면 사흥리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 쪽으로 새로 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 새 길이 박두진 시인의 둘레길의 시작이 될 것이다. 현재 금광호수변 확포장도로는 호수의 중간쯤인 가협마을까지 이루어져 있다. 여기부터 호수의 상류가 되는 하록동 마을까지 도로가 이어지게 되면 금광호수를 순환하는 박두진 둘레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박두진 시인의 고향은 이런저런 이유로 변한다. 고요했던 금광호수변으로 하루에도 수백 대의 차량들이 돌아나갈 것이며 그의 집필실을 찾는 발걸음들도 잦아질 것이다. 사색의 시인이었던 그가, 하루종일 바라보며 시상을 가다듬었던 금광호수는 어찌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빛을 바꾸며 사유의 깊이를 이끌었던 호수는 물놀이하는 배들로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다. 겨울이면 호수를 찾던 청둥오리떼와 가창오리떼가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장엄한 풍경은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금광호수의 순환도로가 완성되고 호수 주변이 위락지역이 되면 음식점이 들어서고 행락 인파가 몰려들고 생활 오수가 호수의 수질을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이쯤되면 박두진 둘레길은 그를 기리는 길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시인이 다시 찾는 고향이 꿈에도 그리던 따스한 고향, 사람 냄새 살아있는 고향, 유토피아적 이미지로 가득찬 고향이 되게 하는 자연친화적인 개발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