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경애(姜敬愛·1906~1944)는 38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요절 작가'다.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간문제'(人間問題)로 한국문학사(史)에 우뚝 섰다.

이십대 후반의 강경애는 인천 방직 공장과 부두 날품팔이 노동자를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켰다. 부두 노동자 쟁의와 공장 노동 현장이 근대 장편 소설의 소재로 쓰인 건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처음이었다.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인천 부두·공장 노동자의 하루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인간문제'는 80년 전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기록을 보면 1930년대 발표된 장편 소설 120여 편 중 100여 편이 신문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인간'과 '문제'라는 다소 어려운 인문학적 개념이 들어간 소설이라고 해서 딱딱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문제'는 인천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당대 인천이 아니면 풀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강경애가 소설에 담았다.

1990년대부터 강경애 연구가 활발했지만, '강경애와 인천'이란 주제에 매달린 연구자는 흔치 않다. 강경애의 인천 행적, 당시 동양방적을 중심으로 이뤄진 노동운동과 강경애의 연관성 등이 아직 구체화 돼 있지 않다.

'인간문제' 삽화를 청전 이상범 화백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소설 중간에 삽화가가 이청구 화백으로 바뀐 것에 어느 연구자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청구 화백은 조선인 최초로 동경미술학교 본과에 입학하고 훗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낸 청구 이마동 화백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청구'와 '이마동'을 동일 인물이라고 지칭하는 연구나 조사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마동 화백은 강경애 작품 연재가 끝난 뒤 같은 신문에서 주요섭의 장편 '구름을 잡으려고'의 삽화를 그렸는데, 이 장편에도 인천이 등장한다.

식민지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강경애의 '인간문제'의 주요 바탕이 되는 인천에서 먼저 나서서 '인간문제와 인천'에 대해 뚜렷한 연구 성과나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부터가 안타까운 일이다.

강경애가 살았던 간도 룽징에 1999년 문학비가 세워졌지만 인천에서는 언감생심인 분위기다. 강경애가 세상을 뜬 지 70년이 지난 2014년, 인천은 여전히 '노동자 도시'다.

부두와 공장으로 몰렸던 노동력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채우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내가 강경애라면 나는 어떠한 '인간문제'를 쓸 것인가.

/김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