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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 |
새로운 가치·세계를 얻기위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금
삶에 지치고, 목표 향하는데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난 지금 무엇을 걸고 달리는가'
임계치는 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값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을 100도까지 끓이면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어떤 상태의 마지노선, 한계치에 마주했다는 표현을 임계치에 도달했다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연합뉴스 TV와 다큐멘터리 5부작을 찍으려고 산티아고 800km의 순례길을 배낭구 메고 걸으면서 다양한 임계치를 경험했습니다. 열 개의 발가락에 모두 물집이 터지고, 발목에 염증이 생기고, 허리부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부상당한 몸을 끌면서 가파른 산길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걷다 보니 수시로 한계에 이릅니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배낭도 팽개치고 등산화도 집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 임계치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를 극복하고 한발 한발 걸으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 그날 걸어야 하는 목표 거리가 다른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상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5km를 처음 걸어본 날부터 그 다음날 걷는 목표가 25km정도면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30km를 걸어본 다음날부터 30km는 별 것 아닙니다. 35km를 걷고부터는 역시 35km는 별 것 아닙니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한 길이었지만 하루에 35km를 걸은 다음부터는 그 다음날 걷는 거리가 35km 이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임계치는 한번만 넘어보면 그 한계가 늘어납니다. 마치 고무줄처럼. 그래서 느낀 것이 '자신의 임계치를 한번만이라도 넘어보면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임계치가 생기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버드대 윌리엄 제임스교수는 '인간은 평생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 중에서 불과 5~7%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든 능력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정한 임계치안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죠.
세렝게티에서는 매일 죽고 사는 달리기가 펼쳐집니다. 사자는 잡으려고 달리고, 가젤은 살려고 달립니다. 그런데 사자, 표범, 치타 같은 동물은 500m이상 전력질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체온이 급상승해서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젤을 쫓을 때는 500m 안에서 승부를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자는 장시간 잠복과 대기로 가젤과의 거리를 줄여 놓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대로 가젤은 일단 500m만 잘 뛰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와 가젤 중 생존율이 누가 높을까요. 상식과는 달리 가젤이 높습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자의 생존율은 10~20%, 가젤은 30~40%입니다. 그리고 사자가 쫓고 가젤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가젤이 이길 확률은 무려 80%나 됩니다. 사자는 10번의 추격 끝에 2번만 가젤을 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젤은 어떻게 10번의 도망 중에 8번이나 살아서 달아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무엇을 걸고 달리느냐의 차이입니다. 사자는 실패하면 한끼의 식사를 놓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젤은 실패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자는 한끼를 걸고 달리지만 가젤은 목숨을 걸고 달리기 때문에 80%의 승률이 있는 것입니다.
임계치의 핵심은 절실함입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절실함, 한계를 넘어보자는 절실함, 죽지 않고 살겠다는 절실함입니다. 사자는 목숨을 잃을까 봐 500m 이상을 전력질주하기 않고 포기하지만, 가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자에게 물려 죽으나 체온급상승으로 죽으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절실하게 도전했는가. 임계치를 넘고자 전부를 걸었던가. 혹시 한발 뒤로 빼고 대응하지는 않았던가. 적당하게 타협하려 들지 않았던가. 사자와 가젤은 타협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내 삶도 적당하게 타협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임계치와 싸워야 합니다. 임계치와 싸우다가 무릎을 꿇으면 영영 그 임계치를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과 성취를 경험한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임계치를 경신합니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한번만 더 시도하면 그 임계치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임계치를 넘어가 본적이 없는 사람은 늘 중간에 멈추고 맙니다. 스스로 그 임계치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는 지점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는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임계치는 자신이 긋는 선입니다.
삶에 지친다면,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숨이 넘어가는듯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현재 무엇을 걸고 달리고 있는가'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