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맹문재 안양대 국어국문학교수 |
낙원은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그 세계를 만들려면
한발짝씩 나서야 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 가져야
1987년 영국의 삽화가인 마르틴 핸드포드가 출간한 '월리를 찾아라'는 큰 인기를 끌어 현재까지 3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5천500만 부가 독자들의 품에 안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도 1990년에 들어와 빨간색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빨간색과 흰색의 가로 줄무늬 티셔츠에 푸른색 청바지를 입은 월리는 어느덧 익숙한 인물이 되어 있다.
Q라는 계획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로 한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Q'나, 지역 신문의 광고 기사를 쓰는 주인공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이름인 CHEF'S MAIL을 CHEF'S NAIL로 잘못 읽은 채 인쇄한 일로 해고당한 이야기인 '요리사의 손톱' 등에서 감각적인 문체로 현실을 비판해온 윤고은이 그 월리를 패러디해서 소설로 그려냈다.
'월리를 찾아라'의 주인공인 제이는 홍보업체의 비정규직 직원으로서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행사장 일을 한다. 그는 4년 동안 한 업체에 소속되어 일해 왔고 업체의 소장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일용직이어서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어쩌다가 일당이 높은 일이 들어오면 고무되는 것이다. 제이는 천안과 대전 사이에 있는 리버시티라는 곳에서 '월리를 찾아라'라는 이벤트에서 월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는 것이었는데, 일당이 30만원이어서 모처럼 힘이 났다. 제이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미장원에 가서 월리의 머리 모양을 만들었고, 뿔테안경을 맞춰 썼고, 사우나에 다녀왔고, 남성용 비비크림도 세심하게 발랐다.
제이가 맡은 일이란 '월리를 찾아라'에서와 같이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월리 옷차림을 한 그에게 사람들이 다가와 '좋아요'라는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는 스티커를 붙여준 사람에게 사과 한 알을 받을 수 있는 교환권을 건네면 되었다. 사과 유통회사에서 하는 홍보 이벤트의 일이었던 것이다. 제이의 가방 속에는 교환권이 백 장 들어 있었으므로 사람들로부터 스티커를 백 장만 받으면 일과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이는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스티커를 한 장도 못 받았다. 리버시티에 몰려온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이벤트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어 그 역시 군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또한 행사장에는 그 외에도 월리가 60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관심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월리가 월리를 찾아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월리들 사이에서 스티커를 더 가지려는 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장면은 생존 경쟁을 펼치는 우리의 각박한 현실을 예리하게 반영한 것이다. 취업 전쟁터에 내몰린 청년 실업자들이며 비정규직 상태로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월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찾아다녀도 피를 흘릴 뿐 월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월리를 찾을 수 있을까? 블루오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블루오션을 이미 지나간 유행어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레드오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정된 바다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 모두가 싸움에 지쳐 끝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이 심하지 않고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의 지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블루오션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루기가 쉽지 않다. 성공한 사례들이 있지만, 결코 수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블루오션의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블루오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연대이다. 만약 '월리를 찾아라'에 등장하는 제이가 자신의 스티커를 모으는 일에만 열중하지 않고 다른 월리들과 함께하는 길을 모색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모두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우리에게는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시민운동이 필요하고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아직도 레드오션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이나 정치 참여에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태도로는 피를 흘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세계를 만들어가려고 한 발씩 나서야 한다. 붉디붉은 이 세계를 조금씩 푸르게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다. 월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사회적 존재로서 월리를 찾으려고 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람들과 함께 한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김수영, '거대한 뿌리')러하리라.
/맹문재 안양대 국어국문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