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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
갈등에 대해 직면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오는 6월 중순에 정부는 인문정신문화진흥을 위한 대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인문정신 대토론회'가 작년 10월에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추진 TF가 2월에 구성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인문특위가 만들어졌다. 이 대토론회를 위한 사전 준비로 지역 특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경기(수원), 강원(춘천), 충청(대전), 영남(부산), 호남(광주)을 중심으로 한 전국 5개 권역별 토론회가 5월 중에 각각 개최될 예정으로 있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보인다. 하나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더해 인문학을 사회적 생산의 매개로 보고자 하는 창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의식화의 가능성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토론회의 성격도 다양한 지역, 계층, 그리고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치유, 평화, 기억, 나눔, 소통처럼 분명한 주제의식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문도시'나 '인문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대중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대학이 중심이 된 시민강좌 형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아예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에 대한 체험을 직접 드러낼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을 시도하려는 데 있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중들에게 시혜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한 인문적 내용을 공유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문학의 생활 세계적 의의와 효용가치를 드러내고 시민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인문학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들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것이며 그들 일상적 경험의 산물로서 정신문화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범사회적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상당한 수준으로 진화되고 있다. 한동안은 시민들을 위한 계몽의 성격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의 인문학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가치나 태도, 인식 제공이 시급하다. 사회 한두 곳에 집중된 엘리트 문화가 아닌 시민 전체를 아우르는 시민의식 고양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문학의 역할을 장식이나 보존 수준으로 제한해서 보는 시각이 있다. 수원의 예를 보자. 흔히 수원화성의 보존 자체를 인문학으로 대입시키거나 정조의 효를 인문적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하는 일은 단순히 도시 한가운데 길게 이어진 성곽이나 행궁 행차에 얽힌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타지에서 오는 사람을 화성에 데리고 가 성곽을 따라 걷긴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얽힌 얘기도 하고 정조의 효도에 대해서도 한 마디 섞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수원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수도권의 중심도시로서 수원이 갖는 진정한 정체성은 지금의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의 재현을 인문학적 행위로 볼 수는 없다.
인문학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인문학은 도시의 갈등해결에 일조해야 하고 시민의식 같은 정신적 영역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 도시 속에서 빛을 발하려면 시민들의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고 이웃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문학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두드려 줘야 한다. 인문학은 도시 한 구석의 물질적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욕구와 갈등에 대해 직면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 정부가 기획하고자 하는 인문정신문화 대토론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인문학의 방향을 우리사회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나 태도에 두고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이러한 기획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길 바라고 시민들 몫이 되어 그들의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정신은 시민의식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