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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을 竹島로 명칭 '모순'
한국 법률적 근원 모두 부정
독도(獨島)는 우리나라 고유영토다. 이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공식문서에 의해 증명되고 있으며, 일본 스스로도 수차례에 걸쳐 독도가 일본의 소유가 아님을 인정한 역사적 선례가 있다. 일본은 이러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근거없는 영유권 주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곽진오(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일 열린 2014 상반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허구'라는 주제로 강의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독도는 우리 역사에서 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중 우산도가 가장 흔히 사용됐고, 19세기 후반들어 석도와 독도가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1905년에야 독도를 '다케시마'(죽도·竹島)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은 20세기 이전 역사서 등에는 독도를 마쓰시마(송도·松島)로,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호칭해오다 20세기 초부터 갑자기 두 섬의 이름을 바꿔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곽 연구위원은 "공식·비공식을 막론한 어떤 일본측 자료도 바위투성이 섬 '독도'가 왜 '대나무 섬(죽도)'으로 불리게 됐는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시기는 1904년 러일전쟁부터다. 일본은 울릉도에 망루를 설치하고 러시아 군함의 동해 항해를 감시했다.
이 과정에서 독도가 장차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1905년 2월 22일 독도의 자국 영토 편입을 선언하는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시행한다. 이 고시에서 독도의 명칭을 마쓰시마(송도)에서 다케시마(죽도)로 개칭한다.
곽 연구위원은 "전쟁 이후 일본은 이 고시를 근거로 '무주지 선점론'(無主地 先占論)에 따른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독도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권원(權原·법률적 근거)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이같은 '무주지 선점론'은 1950년대 '고유영토설'이 등장하면서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1953년 7월13일자와 1954년 2월10일자 일본 외무성은 우리나라에 보내온 문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했다.
주인 없는 땅이라 점거했다면서 원래 자신의 땅이었다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논리를 억지로 결합시킨 것이다.
1905년 독도는 결코 무주지가 아니었다. 일본의 독도 편입도 유효한 법률적 행위로서 인정될 수 없다는 증거도 있다. 일본외무성은 2008년 2월부터 독도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지금이라도 독도문헌이 발견되면 한국영토로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앞서 1900년 칙령 41호를 통해 '울릉군'의 행정단위 안에는 울릉도 뿐 아니라 죽도(울릉도 연안의 작은 섬), 석도(지금의 독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정했다.
이 칙령은 관보에도 게재된 만큼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일본의 주장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 당시 독도는 사람이 없는 섬이었을지는 몰라도 주인 없는 섬은 아니었다.
곽 연구위원은 "일본의 무주지 선점논리에 의한 독도영유권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자기소모적 논쟁으로 이웃나라와의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라며 "우리도 일본이 독도와 관련해 그릇된 논리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 강좌는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강사로 나와 '땅문제이자 사람문제인 간도, 간도협약'을 주제로 강연한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