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식집단인 대학교수들이 2001년을 정리하는 한자성어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을 꼽아 화제를 끌었다.
9·11 미국 테러참사와 보복전쟁으로 어수선했던 국제정세, 자고 나면 새로운 '게이트'가 언론을 뒤덮는 국내사정 등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일부 교수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이 사회의 부정직성·불확실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해를 마감하는 단골메뉴였던 '다사다난(多事多難)'을 제치고 '오리무중'이 대표적 수식어로 등장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원칙없이,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야 하는,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스캔들'인 고무줄식 가치관은 급기야 이 사회를 뇌물을 먹다 들켜도 일단은 '단순한 선물이었다'고 둘러대야 하고, 마약사범으로 몰려도 '필로폰인 줄 모르고 먹었다'고 우기면 되는 코미디판으로 전락시키기에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시각각 변하는' 원칙이 정치판이나 부도덕한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모름지기…'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아버지가 술자리에서는 '화끈하게 놀 줄 알아야 한다'는 원칙을 들이대고, 뺑소니와 난폭운전을 목청높여 비난하던 정의감은 음주운전중 단속경찰을 따돌린 무용담에 박수를 치는 공범의식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있는자, 강한자의 무원칙에 가슴을 치며 분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중성에는 '예외없는 원칙이 어디 있느냐'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며 항변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 고위직 인사를 놓고 '출신지역'을 꼼꼼히 따지며 혀를 차고 사소한 축구경기에서도 감독의 원칙없는 선수기용에 흥분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는 '내 사람 네 사람'을 따지고 내 학교 후배, 내 고향 선배를 챙기고 찾는 것을 성공의 지름길로 여긴다.
상황과 때에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식'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변칙'일 뿐이다.
기본기없는 운동선수가 임기응변과 변칙만으로 정상에 설 수 없듯, 원칙없는 사회, 원칙없는 국가는 결코 오래 지탱할 수 없다.
2002년 새해가 밝았다. 원칙대로 일하고 원칙대로 승리하고 원칙대로 인정하는 2002년,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