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는 다르나 국내 간판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세계최대의 직장평가 사이트인 '글라스도어'에는 세계IT업계 5위 삼성전자와 61위 LG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리뷰 글들이 상당한데 부정적인 평가가 유달리 많아 보인다.
푸른 눈의 리뷰어들은 해당 기업의 전현직 근로자들이어서 영향력이 큰데 주목되는 사례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사가 매우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으며 일을 다 끝내도 퇴근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본다", "경영자들은 늘 회사위기만 강조하면서 정신 차리라는데 너무 식상하다", "회의에선 참석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대장 혼자만 떠든다"는 등 날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업에 근무한 탓에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다.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은 고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한국적 정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스타 운운이 민망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무모할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캔두(can do)정신, 톱다운(top down), 캐치업(catch up) 등을 지적했는데 군사문화적 색깔이 특히 강하다.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하며 부하직원을 다그치던 정주영 왕회장과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죽자'며 포항제철소 건설을 독려하던 기업가 박태준이 연상된다. 군인정신이야말로 산업화기의 한국경제를 견인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 이래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에서 예편한 수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과 동시에 공기업 혹은 민간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임명되었다. 기업가 계층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에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간부로 성장한 엘리트들이 돋보였던 탓이다. 퇴역 혁명동지들에 대한 복지차원의 배려도 한 이유이나 군사정부의 '속전속결'식 경제개발사업에 지휘관 경력은 다다익선이었던 것이다. 이후부터 국내 기업들은 돌관경영으로 세계를 누볐고 그 와중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유수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는 간과해 문화충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경영의 시대이다. 문화경영이란 경영의 뿌리이며 정신적 지주인 기업문화에 근거하여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기업문화는 특정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신념, 이념, 습관, 규범, 전통, 기술 등을 전부 아우르는 것으로 자본설비나 노동력, 원료 등에 버금가는 중요한 생산자원이다. 20세기말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세계화, 정보화, 산업민주화가 급진전되면서 기존의 과학적 관리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던 것이다.
현대 기업문화의 공통적인 특성은 혁신지향, 실패를 용인할 줄 아는 도전문화와 열린 경영, 속도 중시, 브랜드가치 극대화, 고객지향, 사회공헌 등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문화들이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화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제3의 물결혁명'으로 명명했다.
한국기업 특유의 문화적 특수성도 고려해야하나 '돼지발의 진주' 혹은 갈라파고스식의 문화 지체(遲滯)는 곤란하다. 'Z이론'의 창시자 W. G. 오우치 교수는 "조직의 최대 특징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데 있다"고 설파했다.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못하는 기업문화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