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권력정치가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시하는 것임에 반해, 현실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정치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실정치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에 대한 진지한 설득과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파세력을 포진시키는 것, 세력간의 다툼이 현실정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쟁투의 모습이 권력정치로 치환되지 않으려면 현실정치가 새정치로 보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새정치는 반드시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안철수 대표는 현실정치와 새정치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정의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좌절됐다. 그리고 기초무공천과 새정치를 과도하게 등치시킨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었던 기초무공천은 애당초 새정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통합의 고리로도 미약했다. 안철수 의원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김한길 대표가 직면했던 당내 리더십의 위기가 만난 지점이 합당이라는 주장이 정파적 혐의가 짙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기초공천을 둘러싼 논란으로 안철수 입지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기초무공천 철회 이후 보여준 안 대표의 정치행태다. 개혁공천을 들고 나왔다.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으나 개혁공천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측과 구 민주당, 특히 친노진영의 공천 다툼으로 비치고 있고, 광주지역 의원들의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공천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을 걸었던 기초무공천의 명분은 기초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후보 줄세우기를 혁파하고 지방자치의 본래 뜻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야권의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광주에서 안철수 측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선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공천은 불가피하게 현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물갈이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상당수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이 구 민주당 계열이라면 계파대립은 불가피하다. 기초공천을 둘러싼 계파갈등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정당지지도조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공천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논거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야권의 자중지란은 가속화될 수 있다. 5:5 공천 지분의 기계적 균형에 집착해서는 개혁공천도, 지방선거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자파 세력 심기에 집착하는 모습은 개혁공천의 정신을 훼손시킨다. 기계적 물갈이는 현역단체장과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어느 선거에서나 물갈이가 공천개혁의 화두로 등장한다. 특히 총선거에서 물갈이 비율이 높기로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의회가 물갈이를 잘 해서 세계에서 정치 모범생이 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그랬고, 18대 국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물갈이에 또다시 새정치의 모든 것을 거는 우를 범한다면 안철수 대표는 학습효과와는 아예 담을 쌓은 정치초년생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릴지 모른다.

안철수 대표가 할 일은 새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자파 세력을 포진시키지 못하고는 후일을 장담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특정 계파의 좌장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자리매김했다면 새정치란 말을 입에 담아선 안된다. 구시대 정치와 같은 문법으로 정치를 얘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는 민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피곤한 영혼들이 왜 삶에 대해 좌절하는지, 아직도 새정치 화두는 왜 유효한지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때, 거대 양당 구조를 깨겠다던 안철수가 바로 그 거대정당 '호랑이 굴'에 들어간 보람의 단초라도 열릴지 모른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