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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사·의사 등 나서기 꺼려
복지사각지대 문제도… '방임도 범죄' 인식 절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온갖 썩은 오물이 뒤덮인 집안에서 수년간 방치됐던 '쓰레기 지옥 4남매'의 충격적인 사연은 '아동방임' 실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
또 아동방임은 학대 내지는 범죄행위가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과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특히 이 사건은 방임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한 현행 법 체계와 제도적 장치 등 사회안전망의 '허점'도 여실히 드러냈다.
쓰레기 더미 속 4남매가 구조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방임 신고가 아닌, 뜻밖에도 시끄럽게 돌아가는 '보일러 소음'이었다.
지난 7일 오후 7시40분께 4남매가 사는 인천시 계양구의 한 빌라 위층 집 주민이 "아랫집에서 보일러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아이들만 있는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보일러 소음이 아니었다면 4남매는 언제까지 방치됐을지 모를 일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교사나 의사 등을 아동학대(신체·정서·성·방임 등)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4남매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13)와 셋째(9)의 담임교사들은 아이들이 씻지 않아 냄새가 심하거나 계절이 지난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다고 전했다. 두 남매는 한글도 못 떼는 등 학습능력도 많이 뒤처졌다.
한 교사는 "날씨가 추운데도 얇은 옷만 입고 와 외투를 사서 입혀 집으로 보냈더니 엄마한테서 다음날 학교에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동학대를 의심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신고가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교사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을 때 너무 깔끔한 차림으로 방문했고 아동학대가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고하기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심장 근육에 구멍이 있는 병을 앓아온 둘째는 최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용변을 가리지 못하고 있는 막내도 입원해 검사를 받고 있다. 4남매는 신고의무자인 의사의 도움을 받을 기회도 있었다.
4남매를 격리 보호 중인 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막내는 만성변비 증세로 과거 인천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진료과정에서 방임 등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신체발달 지연, 언어문제, 영양결핍, 대소변 문제, 위생 상태 등이 의심되지 않았는지 결과적으로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당시 진료한 의사가 누구인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4남매 가정은 '복지 사각지대'에도 놓여 있었다. 부모가 수입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계층 지원 대상도 아니었고, 지자체가 위기가정을 돌보기 위해 지정하는 사례관리 대상도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일한 어머니 A(39)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에서 "매일 12시간 동안 일하는데 아침에야 들어왔기 때문에 집안을 치우기 힘들었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 내용과 주변 이웃들의 목격담, 4남매 아버지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A씨는 생활고·육아 스트레스·우울증 등으로 힘들어 했으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외부의 도움을 철저히 차단했다.
방임의 원인이 이러한 경제적·정신적·사회적 측면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고의무제가 있어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인 상황이다"며 "아동을 혼자 내버려둬도 학대(방임)가 될 수 있다. 방임의 모호한 개념을 그대로 제도에 넣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임승재·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