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도 싫지만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했다. 무려 292명이 사망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배의 선장은 백운두(白雲斗). 사고후 한 진보매체 신문은 '백운두 선장이 살아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승객은 죽어가고 있는데 배를 끝까지 지켜야 할 선장이 자리를 피해 본인만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백 선장이 멀쩡한 채 구조 어선에서 내리는 걸 봤다는 주민들의 목격담도 실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검찰은 백 선장을 전국에 지명수배하고, 그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인근 섬을 수색했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이틀후 구조대는 선장실에서 죽어있는 백 선장을 발견했다. 대부분 선장이 그렇듯 그 역시 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안전수칙을 어기고 운항함으로써 292명 승객의 귀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홀로 도피한 파렴치한으로 묘사되던 백 선장이 갑자기 배와 승객들과 장렬한 최후를 마친 영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마스터(master). 즉 선장에게는 '선장의 임무'라는 것이 있다.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이다. '선장은 자기가 지휘하는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선박 및 적화물의 구조에 필요한 수단을 다하여야 한다'. 이른바 '선박 위험시의 조치의무'다. 그리고 선장은 '선박이 충돌한 때에는 자기가 지휘하는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명과 선박의 구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선박충돌시 어떻게 조치하여야 하는가를 명시한 것이다. 1천513명의 사상자를 낸 타이태닉호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이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선장의 임무를 다하고 최후까지 타이태닉호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해경이 선장과 항해사의 신병을 확보해 사고원인 조사에 나섰다. 현재 선장은 사고가 난 후 배와 승객을 놔두고 제일 먼저 탈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해경은 그를 상대로 왜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면서 본인은 피했는지, 구명정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선장의 임무'에 충실했는지 조사가 이뤄질 것이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지 못하고 버젓이 살아있는 선장. 지금도 절대 암흑의 공간속에 갇혀있는 학생들. 부끄럽고 애통하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