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 선장 등 승무원 3명이 구속된 가운데 사고 단초가 무리한 항로변경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승선에서 하선 때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선장의 이해 못 할 행동이 상상을 초월한 인명피해를 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 내용과 구속된 선장, 항해사의 진술, 해양전문가의 의견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승객 등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난 지 9시간여 만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孟骨水道)'를 막 지나 병풍도 북쪽 해상에 이른 시각은 지난 16일 오전 8시 42분께.

운항 경력 13개월째, 입사 5개월이 채 되지 않은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6)씨의 눈앞에는 거센 물살이 넘실거렸다.

안개로 2시간 가량 출발이 늦어지지 않았다면 이 구간은 베테랑인 1등 항해사가 맡을 구간이지만 선사측이 이를 조정하지 않은 바람에 지금껏 한번도 이 구간을 운항한 경험이 없는 박씨가 맡게 됐다.

평소에도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이 구간은 이날 막 사리(15일)를 지난 데다 썰물 때와 맞물려 물살이 더 거셌다. 
물살 거세기로 이름난 맹골수도 항로에서 박씨는 조타수에게 방향전환을 지시했다.

이곳은 병풍도를 끼고 제주를 향해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변침점(變針點)이기에 반드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조타수 조씨는 지난 18일 오전 구속 전 진술에서 "항해사 지휘에 따라 평소대로 조타키를 돌렸다. 하지만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고 말했다.

조씨는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조타키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적인 항로에서 보통 5도 안팎의 조타륜(조타키) 조정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작게 돌리지 않고 5도 이상 돌렸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세월호는 또 평소 협로에서 운항하는 속도와 비교해 더 가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선구간에서는 18~20노트, 협로에서는 16~18노트로 운항하게 돼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는 조타수가 '조타키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말과도 무관하지 않다.

해운업계에 종사한 한 베테랑 조타수는 속도가 느릴 때보다 빠를 때 키가 잘돈다고 전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 대목에서 항해사와 조타수의 결정적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수사본부도 이들의 혐의로 운항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리한 변침을 해 선박을 침몰시킨 점을 적시했다.
김삼열 전 목포지방해난안전심판원장은 19일 "뱃머리를 심하게 꺾는 과정에서 거센 물살 저항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며 "순간 배가 휘청거리고 복원되지 않자 당황해 조타기를 더 무리하게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도 해상관제센터(VTS)에서 확인된 항적에도 세월호는 계속해서 우현 변침으로 조작했으나 뜻과는 반대로 좌현으로 계속 쏠렸다.

세월호는 정상적인 방향에서 무려 115도나 틀어졌다. 뱃머리가 오던 방향으로 거꾸로 되돌려진 상태로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었다.

배가 좌현으로 밀리면서 제대로 결박되지 않은 화물, 차량 등이 쏟아지고 세월호는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많은 승객들이 배가 기우뚱한 뒤 '쿵'하는 소리가 났다는 진술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해양 전문가들도 세월호가 외부 충격에 의해 침몰한 것이 아닌 만큼 선체에는 파공(破孔) 흔적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 등도 항로에는 어선 등 외부적인 위험상황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은 사고 전후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의 행적이다.

수사결과 이씨는 맹골수도 항행을 박씨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실에서 쉬고 있었다. 탈출 당시 입고 있는 반바지 차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24시간 배를 책임져야 하는 선장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배가 기우뚱하자 당황한 채 조타실에 뛰어온 선장은 우왕좌왕 시간만 허비하다 수백여명의 승객들은 선실에 남긴 채 자신만 빠져나왔다.

이씨는 구속 전 진술에서 '승객에게 대기하라'고 한 이유는 "조류가 빠르고, 수온도 차고, 주변에 인명 구조선이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서둘러 유보갑판 등으로 대피하라는 말만 했어도 수백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는 참사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