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에 너무 억울" "지켜주지 못해 마음 아파"
유족들 고인 이름부르고 참았던 슬픔 터뜨리며 '오열'
친구·선후배 운구행렬 동참 고인 넋 기리며 울음바다

"내 딸이다, 내 딸이야."

21일 오전 7시, 안산제일장례식장에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타깝게 숨진 고(故) 박모양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지하 1층에서 입관예배를 마친 뒤 박양의 친구 2명이 영정사진과 위패를 들고 1층으로 올라왔다. 그 뒤를 이어 박 양의 어머니가 하염없이 "내 딸, 내딸아… 내딸"을 외치며 오열했다. 쓰러질듯 위태로운 어머니의 모습에 보는 이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눈물만 흘렸다.

박 양의 관이 운구차에 들어가고, 어머니는 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 입을 맞추며 또다시 오열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들도 모두 큰 소리로 박 양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박 양의 선배 김모(18)양은 "정말 꽃다운 나이에 너무 억울하게 저 세상으로 갔다"며 "조금만 빨리 어른들이 움직여줬더라면, 우리 ○○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텐데… 너무 원망스럽다"고 울었다.

같은 날 오전 9시께, 안산 한사랑병원에는 박 양과 마찬가지로 희생된 고(故) 이모군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장례식장 1층 승강기에 이 군의 관이 모습을 나타내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인근 학교 교복을 입은 이 군의 친구 6명이 관을 들고, 또다른 2명은 각각 이 군의 위패와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은 채 이 군의 마지막 모습을 지켰다.

이들이 앞장서 운구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뗐고 그 뒤를 유가족들과 친구 등 조문객 80여명이 따라갔다. 조문객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주저앉아 이 군의 이름을 부르며 울기도 했다.

이 군의 누나는 더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는 듯, 마른 눈물만 계속해서 흘린 채 멍하니 이 군의 뒤만 쫓아갔다.

이 군을 실은 운구차는 잠시 단원고등학교에 들러, 그동안 정들었던 학교와 마지막 인사를 했고 학교 선·후배들이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친구 박모(17)군은 "세상에서 둘도 없이 착하고 의리가 있는 친구"라며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알았더라면, 연락 한번이라도 더 하고 조금 더 같이 놀걸 그랬다"고 눈물을 흘렸다.

힘겹게 안산으로 운구됐다, 잘못된 신원 확인으로 다시 목포로 돌아가야 했던 고(故) 김모양의 발인식이 같은 날 오전 7시 30분께 안산 산재병원에서 치러졌다.

검안 과정에서 신원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김양은 먼 길을 돌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유가족들과 친구들은 김 양의 영정사진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라고 울부짖었다. 친구와 선·후배들은 김 양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재병원까지 찾아왔다.

후배 장모(16)양은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줬던 착한 선배"였다며 "선배와 보냈던 추억이 자꾸 떠올라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어 아침 일찍 서둘렀다"고 흐느꼈다.

김 양의 관이 운구차에 실려 장례식장을 떠나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린 친구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금세 울음바다로 바뀌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 우리 ○○이가 살아 돌아온 지 알았다. 하지만 너무나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다"며 "엄마 없이 자란 ○○이한테 늘 미안했는데,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더 가슴이 아프다"고 오열했다.

/특별취재반

■ 특별취재반 

▲ 반장 = 박승용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 반원 = 김대현 차장, 박종대·공지영·윤수경·강영훈 기자(이상 사회부), 이재규 차장, 김영래 기자(이상 지역사회부), 김태성 기자(정치부), 김도현 차장, 임승재·김민재·정운·홍현기·김주엽·박경호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회부), 김종택 부장, 임열수 차장, 하태황 기자(이상 사진부), 임순석 부장, 조재현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