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세월호가 15일 인천항을 출항했을 당시 제주도로 가는 항로인 평택과 태안해역의 시계가 짙은 안개 등으로 500m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인천해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인천해경은 세월호 출항(오후 9시) 전인 오전 5시 35분 저시정 1급(시계 91.44m미만)을 설정했다가 오후 8시45분께 저시정 2급(시계 457.2m미만)으로 하향조정하면서 세월호의 운항을 승인했다. 출항 당시 인천항의 시계는 1.5㎞를 기록했다.
인천해경은 이날 인천항의 시계가 1.5㎞이상으로 안전에 문제가 없지만, 주의를 당부하는 차원에서 저시정 2급을 설정하고 운항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저시정 1급 설정시 어선을 제외한 모든 선박의 출항을 통제하며, 2급인 경우 낚시어선과 여객선 등 다중이용 선박에 대해 안전문제를 고려해 출항을 통제하거나 승인한다.
평택해경은 관할 해역에 출항일인 15일 오전 5시부터 17일 오전 6시10분까지 저시정 2급을 설정했으며, 태안해경도 15일 오전 5시40분부터 16일 오전 6시30분까지 관할 해역을 저시정 2급으로 설정했다.
저시정 2급은 시계 457m 미만이기 때문에, 이는 가시거리가 1㎞ 이하일땐 모든 내항여객선의 출항을 통제한다는 해사안전법 시행규칙의 선박출항통제 기준과 배치된다. 하지만 해경은 자체 기준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상황실에서 출항 허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인근 해역의 안개 상황도 점검한다"며 "이날 세월호 출항 당시에도 평택·태안·군산 해역에 출동중인 경비함에 가시거리를 문의한 결과, 제주까지 운항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출항 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해경은 운항통제를 할 수 있는 해역을 지나는 선박에 안전운항 당부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평택해경 관계자는 "이미 운항 중인 해역의 시계가 갑자기 나빠지면 VTS(해상교통관제센터)에서 주의 운항을 당부하지만, 해경의 역할은 아니다"며 "바다는 항공과 달리 선장의 영역이 크기 때문에 선장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출항 당일 안개가 짙어서 다른 배들은 출항하지 못했지만 세월호만 2시간30분 늦게 출항을 했다고 한다"며 "실제로 출항이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짚어봐야 한다. 앞으로도 출항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 이익만 염두에 두고 무리한 출항을 하는 행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고 지적했다.
해역에 대한 관제를 담당하는 VTS의 운영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로 이원화된 것도 이번 사고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세월호는 사고해역에서 가까운 진도연안 VTS가 아닌 80㎞ 떨어진 제주VTS에 첫 조난신고를 하는 등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초동조치를 할 수 있는 10여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진도 VTS는 해양경찰청에서 관리하고, 제주 VTS는 해양수산부가 운영한다.
이처럼 이원화된 관제시스템으로 인해 세월호에서 오전 8시55분 제주 VTS에 조난신고를 하고, 제주 VTS는 1분 뒤 해경에 신고했는데도 진도연안 VTS가 세월호와 교신하기까지 10분이나 소요됐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조활동 등에 혼선을 빚게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별취재반
■ 특별취재반
▲ 반장 = 박승용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 반원 = 김대현 차장, 박종대·공지영·윤수경·강영훈 기자(이상 사회부), 이재규 차장, 김영래 기자(이상 지역사회부), 김태성 기자(정치부), 김도현 차장, 임승재·김민재·정운·홍현기·김주엽·박경호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회부), 김종택 부장, 임열수 차장, 하태황 기자(이상 사진부), 임순석 부장, 조재현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