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안개로 출항 지연
9시 가까워지자 승객 탑승
3층 뒤쪽 객실 짐풀고 취침

아침식사 마치자 배 기울어
난간 매달려 30분 버틴끝에
헬기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
"그때까지 퇴선 방송 없었다"


"일하면서 여행도 할 겸 택한 첫 제주행이었는데…."

21일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화물차 운전기사 양모(49)씨는 사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현재 진도에서 인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아직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드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 4월 15일 오후 6시 인천항

세월호는 당초 15일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심한 안개로 인해 출항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 시각 양씨는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함께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좋겠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양씨는 이때 터미널에서 방송이 나왔다고 했다. 밤 11시에 세월호가 출항할 예정이니 배를 타지 않을 사람은 표를 환불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양씨는 "수학여행으로 한참 들떠 있는 아이들이 그 시간에 집에 가겠느냐"며 "밤 9시가 가까워지자 안개가 많이 걷히면서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 4월 15일 출항 전 오후 9~11시

양씨는 화물차 기사 3명과 함께 배정받은 3층 뒤쪽 객실에 짐을 풀었다고 했다. 세월호는 출항했고 인천대교를 지날 때쯤 누군가에 의해 갑판에서 불꽃놀이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양씨는 피곤하기도 하고, 불꽃 터지는 소리가 시끄러워 객실에 들어와 잤다고 한다.

■ 4월 16일 오전 7시 제주항 입항 예정시간 선내 방송

양씨가 눈을 뜬 것은 16일 오전 7시께. 배는 진도 해역을 지나고 있었고, 동료 화물차 기사들은 아침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양씨는 "학생들 먼저 먹고 먹자"며 객실에서 잠시 기다렸다고 한다. 그 무렵 선내 방송에서 "낮 12시 제주항으로 입항할 예정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 4월 16일 오전 8시30분 식사

학생들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것으로 판단한 양씨가 동료기사들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시각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각이 오전 8시55분께.

양씨는 "배가 급격하게 기울었다"며 "심하게 커브를 트는 줄 알았는데, 넘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양씨는 전한다.

■ 4월 16일 오전 9시30분 선박 전도 및 탈출

양씨는 배가 뒤집어지면서 하늘로 향하는 객실 문을 열어 호스를 겨우 붙잡고 탈출했다고 한다. 그렇게 배 난간에 30분을 매달렸다. 구조헬기가 양씨를 구조했다. 이때까지도 퇴선을 하라는 방송은 없었다고 양씨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3층 뒤쪽 객실은 빠져 나오기가 비교적 용이했다"며 "하지만 가운데 있는 식당칸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은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양씨는 또 "배 난간에서 구조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한참 동안 구조는 하지 않고 사진만 찍더라"며 당시 초동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반

■ 특별취재반 

▲ 반장 = 박승용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 반원 = 김대현 차장, 박종대·공지영·윤수경·강영훈 기자(이상 사회부), 이재규 차장, 김영래 기자(이상 지역사회부), 김태성 기자(정치부), 김도현 차장, 임승재·김민재·정운·홍현기·김주엽·박경호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회부), 김종택 부장, 임열수 차장, 하태황 기자(이상 사진부), 임순석 부장, 조재현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