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를 맞은 22일 단원고 학생들의 발인식이 잇따랐다. 장례식장마다 울음소리 마저 슬픔에 갇힌 듯 갑갑하고도 무거운 가운데 발인식이 엄수됐다.
또 마지막 길을 가는 아들과 딸, 그리고 친구를 배웅하기 위한 부모님과 학교 친구들의 애틋한 마음이 구슬픈 흐느낌으로 식장 곳곳을 맴돌았다.
이날 세월호 사고로 숨진 정모군과 박모양 등 단원고 2학년 학생 10명의 발인식이 안산에서 진행됐다.
오전 7시 50분께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장례식장. 이른 아침부터 세월호 침몰사고의 첫번째 희생자인 고(故)정모군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발인제를 마치고, 운구차가 있는 지하1층에 정군의 영정사진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진 속 정군은 똘망똘망한 눈빛의 착한 아들이었다. 정군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한걸음도 혼자서는 떼지 못한 채 영정사진만 바라봤다.
지하1층 영안실에서 정군의 관을 들고 운구차로 향하자,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어머니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조문객들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았다.
한 조문객은 "○○ 아 잘가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곳에선 제발 행복해라"는 말만 계속 읊조렸다.
오전 8시 20분께 고(故)박모양의 발인식은 조용한 예배로 시작했다. 유가족과 박양의 친구 등 수십명이 참석했고 나지막한 기도 소리 중간에 슬픔을 참지못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운구차로 박양의 관을 옮기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양의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이제와 다 말해 무엇하겠냐"며 울먹였다.
박양은 화장을 위해 연화장에 도착하기 전, 단원고등학교에 들렀다. 이번 사고로 함께 하늘나라로 떠나게 된 친구들과 노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양의 유가족은 노제를 지내지 못했다. 박양이 도착했을 때는 노제 지낼 준비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에서 마지막 추억을 쌓지 못한 채 박양은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같은 시각, 안산 한도병원 장례식장에는 무대 위 슈퍼스타를 꿈꾸던 고(故)이모군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유가족과 지인, 친구 등 수십명이 모여 이군의 평안을 위해 조용히 발인제를 마쳤다.
발인제가 끝난 뒤 제단을 치우던 이군의 고모는 "우리 ㅇㅇ이 어떻게 보내, 아이고 내새끼 아까워서 어떻게 보내나…"며 흐느꼈다.
김모(17)군과 장모(17)군은 죽마고우인 이군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왔다. 죽마고우의 손에 들려 운구차에 이군의 관이 실리자, 이군의 아버지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내아들아." 아버지의 한맺힌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퍼졌고 이를 지켜보던 조문객들도 눈물을 쏟아냈다.
연화장에 가기 전 이군을 실은 운구차는 학교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군의 유가족이 도착했을 때 노제 준비가 완료됐고 유족들은 무사히 이군의 노제를 지냈다. 그렇게 이군은 소중한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던 학교에서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