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객을 내버린 채 도망쳐 나온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에게 비난이 빗발치는 사이 구조에 나선 해경, 군(軍)은 아무런 책임도 없는 양 변명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시민, 유가족들은 "출동한 해군, 해경은 절체절명의 순간 왜 선내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지에도 뛰어들던 '막강 국군'은 어디로 가고 세월호주변만 맴맴 돌았느냐"고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승무원과 관제센터가 우왕좌왕하며 승객 구조 '골든 타임'을 놓친 데 이어 현장에서 또다시 귀
중한 시간만 허비한 채 침몰하는 여객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는 이렇다.
출동 지시를 받고 사고 당일(16일) 오전 9시 30분께 현장에 최초 도착한 목포해경 123함(110t)은 경비함으로서 선내 진입 요원이 없고 장비도 갖춰지지 않았다. 이후 해경 구난 헬기가 도착했지만 여기에도 선내 진입 인력이나 장비가 없었다. 헬기에 무게가 엄청난 장비를 실을 수 없고 출동 후에도 여객선이 침몰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게 해경의 변명이다.
바다에 빠진 탑승객을 구조하는 데 신속한 출동이 한몫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군도 마찬가지다.
|
▲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 당시 출동한 해경들 /해양경찰청 제공 |
구조함은 훈련이나 정비 중이었다. 구조함 한 척은 충남해역에서 사격 훈련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함은 정비 중이었다.
사고 해역과 가장 가까운 쪽인 신안 흑산해역에서 작전 중 신속하게 투입된 유도탄 고속함은 최고 속력(40노트)로 달려와 오전 11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유도탄 고속함은 작전용이다.
이후 해군은 링스와 UH-60 헬기를 띄웠다. 링스헬기는 잠수함 탐색이 본래 임무이고 UH-60 헬기는 특수 목적의 인원 이송용 헬기다.
구조함은 출동 지시가 내려진 직후 어청도와 거제 해역에서 최고 속도로 달렸지만 전투함보다는 느려(12∼15노트) 다음날 새벽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여객선은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군은 헬기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구명환을 바다에 투하하는 등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해경 자료에 따르면 단 한 명의 인명도 구조하지 못한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UH-60헬기는 진해에서 SSU, UDT 대원을 최대한 빨리 투입시키기 위해 출동한 것이며 구조함은 출동지시를 받고 훈련과 정비를 중단하고 신속하게 이동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선내 진입 장비를 갖춘 특수요원이 신속하게 도착했다면 더 많은 인명이 구조됐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
▲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 당시 출동한 해경들 /해양경찰청 제공 |
신속한 출동 구조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판단으로 현장에 맞는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런 가운데 목포해경 123함 이형래(37) 경사는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선체에 올라가 구명벌을 터뜨렸다. 구명조끼를 흔들며 구조를 요청한 탑승객 6명을 동료 직원과 함께 구조했다.
선체 내 진입이 늦어지는 사이 세월호는 오전 11시 18분 선수 부분만 남기고 물에 가라앉았다. 오후 2시 특수구조인력이 투입됐지만 선내 진입은 하지 못했다. 사고 발생 9시간 만에야 비로소 진입에 성공했다.
오로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 '안보' 개념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안보이며 그 대상은 홍수, 가뭄, 대규모 재난 등 꼭 북한이 개입된 사안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