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탑승객 구조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17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있는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를 낸 청해진해운은 옛 세모해운 시절부터 낡은 배를 돌려막으면서 고비마다 빚을 털어내는 수법을 되풀이해 쓴 것으로 확인됐다.

노후 선박 헐값 매입, 비정상적인 채무 탕감, 안전 비용 절감 등으로 발생한 차익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재산을 불리는 데 일조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부실한 운영 탓에 이 회사가 띄운 배에 탄 승객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례가 반복됐고, 끝내 세월호가 지난 16일 476명을 태우고 침몰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모그룹은 1997년 8월 외환위기를 앞두고 16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이어 1999년 2월 법원에서 세모그룹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계획안이 인가됐다.

당시 세모그룹이 당좌계좌를 튼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서류상 세모그룹의 부도 사유는 '어음 결제 자금 부족'으로 돼 있다"며 "자금 융통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룹 규모에 견줘 결제가 소액이라 고의 부도를 의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모그룹 부도 직후 집계된 이 회사의 금융권 여신은 3천800억원에 달했다. 매년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로 따져 16년이 지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조원에 육박한다.

세모그룹이 부도난 지 1년 만에 청해진해운의 '형님' 격인 ㈜온바다가 1998년 11월 세워져 옛 세모해운의 선박을 물려받아 여객선 사업을 재개했다. ㈜온바다의 대주주 김혜경 현 한국제약 대표는 유 전 회장의 비서 출신으로 알려진 최측근이다.

세모그룹의 법정관리 개시와 같은 때인 1999년 2월 청해진해운이 세워져 2005년 10월 옛 세모의 조선사업부를 인수하면서 그룹은 본격적으로 재기했다. 같은 시기 ㈜온바다는 자본잠식에 빠져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이후 청해진해운에 인수됐다.

결국 세모→온바다→청해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선박까지 물려받아 여객선 사업을 지속했고, 이 과정에서 법정관리와 출자전환으로 거액의 채무를 탕감받은 셈이 됐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돈이 있는데도 일부러 빚을 갚지 않은 채 부도를 내고 곧바로 다른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있었다"며 "기록상 세모그룹의 부실 자산은 자산관리공사(캠코)로 넘어가 정리됐다"고 전했다.

파행적인 회사 경영은 여객선 운영에서도 반복됐다. 세월호처럼 낡은 배를 운항하면서 잦은 사고와 고장을 일으키고, 고장난 선박 대신에 더 낡은 선박을 투입하기도 했다.

세모 시절 한강유람선 화재로 시작된 이 회사 선박의 사고와 고장은 두둥실호(1995년 노후에 따른 고장으로 운항 중단), 데모크라시 2호(2001년 화재로 침몰), 데모크라시 3호(2001년 화재로 침몰), 데모크라시 5호(2011년·2014년 충돌사고)에서 결국 세월호 침몰까지 이어졌다.

또 세모조선소에서 1995년말 건조된 세월따라호(당시 ㈜온바다 소속)가 2006년 9월 고장을 내 더는 운항할 수 없게 되자 이보다 더 낡은 페가서스호(1995년 8월 건조)를 대체 투입했다.

사고에 대비한 구명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재연됐다. 2001년 화재로 침몰한 데모크라시 2호에선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구명뗏목이 작동하지 않았으며, 세월호의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에서도 구명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돈 버는 데 급급해 안전에는 소홀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세모그룹이 여객선 사업을 고집한 것을 두고 "인천-제주 노선은 해운업종에 종사하면 누구든지 하고 싶어하는 사업"이라며 "경영만 잘하면 흑자를 낼 수 있고, 나중에 사업권 매각 차익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