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가 통곡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날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중략)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주검들과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이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 한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을 못다 핀 어린 주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그토록 잔인했던 4월에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내던져진 이 고귀한 목숨들이 너무 가엾다. 할 말이 없다.
4월 16일 오전 9시 29분 필자의 휴대전화에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 침수중'이라는 문자가 떴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모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뉴스다. 이어 9시 58분에는 '경비정, 헬기 동원 120여명 구조', 10시 18분 '여객선 좌초, 190명 구조', 11시 22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11시 27분 '여객선 완전 침몰… 승객은 전원 탈출한 듯'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1분 '107명 실종, 생사불명'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공식발표는 구조에서 실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실종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같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언론의 확인 없는 발표와 보도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해갔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가 28일 밝힌 실종 학생의 '기다리래'라는 마지막 카톡 시간은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이었다. 선장이 탈출한 뒤 31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던 선장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고, 선장이 속옷 차림으로 배에서 빠져나오는 생생한 모습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로써 11시 이후의 '전원구조, 탈출' 등은 모두 허위발표와 보도로 드러난 셈이다. 얼마만큼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채 허둥댔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세월호 탑승인원 발표만 공식적으로 6번이나 바뀐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고, 어느 한 구석 제대로 작동되는 시스템이 없었다.
부처마다 우왕좌왕했다. 대통령이 사고 현장에 내려가 가족들과 구조대책을 약속했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은 기념사진이나 찍는다.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진도체육관 의자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청와대 대변인은 끓이지도 않았고, 계란도 넣지 않았는데 뭘 그러느냐고 두둔한다. 이쯤되면 한심한 수준을 넘어선다. 해양경찰서장은 80명이면 많이 구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승객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470여명의 목숨을 내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모든 영역에서 잘못된 관행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국가 운영체계의 틀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암을 도려내는 것처럼 침몰위기의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곪아터진 부분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무사안일한 생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약속대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정부도, 정치권도, 사회도, 국민 모두 통렬하게 반성하자.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적 요소들을 척결하자. 애꿎게 희생된 이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직도 실종된 아이를 찾지 못해 통곡하는 어버이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버려두고 그토록 잔인한 4월은 저만치 가고 있다. 얘들아, 대한민국은 할 말이 없단다. '너희들 앞에 영원한 죄인은 어른들이다. 미안하다. 고이 잠들거라.' 이 말밖에는….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객원논설위원
'잔인(殘忍)한 달' 4월을 보내며
어른들 무책임에 희생된 아이들 너무 가엾다
정부·정치권·사회… 모두 통렬하게 반성해야
대한민국은 할말 없단다… 영원한 죄인이니까
입력 2014-04-2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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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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