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판 논바닥에는 지난 가을 제 몸을 고스란히 잘린 앙상한 벼뿌리가 애처롭게 보였다. 겨울 칼바람의 위세에 눌려 허옇게 살갗을 드러낸 벌거벗은 나뭇가지 모습에선 더욱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한가로운 겨울 농촌에서 간간이 퍼득거리는 까치들의 날갯짓은 한결 정겹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건달농부' 장진영(46)씨가 이 곳 한가로운 시골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고 있다.
그의 집 거실에 들어서면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조개탄 난로가 떡하니 자리잡고 주인 행세를 한다. 난로 위에 아이들이 구워 먹다 남은 고구마 서너개가 먹음직스럽기까지 하다. 거실 한편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풍금, 우리 어머니들이 사용했던 손때 묻은 경대 그리고 곰방대 등…. 요즘 시골에서 조차 구경하기 힘든 물건들이지만 이집에서는 모두 요긴하게 쓰이는 세간이다. 그의 시골 생활을 한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집안 곳곳에서 시골살이의 정겨움이 배어 나왔다.
그는 200여평 안팎의 논에 손수 벼를 심어 부인 김진수(41)씨와 큰아이 혜인(13), 막내 철준(9)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농사꾼이다. 건강한 쌀을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대신 그는 논에 청둥오리를 방사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생명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농한기인 요즘 그는 작업실에 틀어 박혀 만화작품에 열중하고 있다.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의 격월 잡지 '처음처럼'에 고정적으로 8페이지의 만화를 연재하는 게 주업이기 때문.
그가 지난 95년 인천에서 보따리짐을 싸 강화도행을 결심한 것은 애초부터 낭만적인 전원생활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소위 참여미술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붓을 접고 만화로 돌아섰다.
그는 대학 4학년때 대한전선 노동조합을 위해 '노동자는 왜 단결해야 하는가'란 슬라이드를 제작한 이후 민중미술운동에 뛰어 들었다. 예술로 평가받지 않아도 대중들의 미적 관점에서 만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대학졸업후인 88년 그는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작화공방'이란 만화제작실을 차리고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전'등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또 그는 미술동인 '두렁이'를 결성해 '걸개그림', '판화' 등과 같은 독특한 민중미술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90년이후 탈냉전으로 사회운동이 몰락하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등 조직이 무너지자 그는 고민에 휩싸인다. 또 공단지역인 인천 가좌동에서 1천80만원에 전세들어 살았으나 주변 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로 아이들의 건강도 말이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가족들을 설득해 무작정 강화도에 둥지를 틀었다. 그렇지만 모든 재산을 처분해 논 400평을 어렵게 구입한 탓에 집 지을 돈 한푼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3개월동안 꼬박 3천500여장의 흙벽돌을 찍고 동구 송현동 재개발촌에서 건축자재를 주워다가 1년만에 어렵게 살림집을 장만했다. 집에 서까래를 얹고 흙벽돌을 쌓는 일은 친구들과 후배들이 품앗이 했다. 1주일 중 6일은 집을 짓고 나머지 하루를 짬내 주간 '노동자 신문'에 만화를 그리는 일로 가족들 입에 겨우 풀칠을 한 것이다.
그는 “공동작업으로 지어진 집이어서 마음대로 팔 수도 없게 됐다”면서 “죽도록 고생했지만 동료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고 보니 사람 장사에서 밑진 인생은 아닌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며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지난해 정말 상복이 터졌다.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엮어 펴낸 자전적 만화 '삽 한자루 달랑 들고'가 지난해 11월 문화관광부의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 상은 그해 발행된 출판물중 최고의 작품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또 지난해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는 등 만화계의 굵직한 상을 휩쓸어 모진 고생끝에 꿀맛 같은 시절을 맛보고 있다.
더군다나 서양화를 그리고 있는 그의 부인도 올초에 출판사 문학동네 공모에서 '어린이 그림책'이란 작품을 내 '일러스트'부문 가작을 수상하는 경사가 겹치기도 했다.
그의 책이 상을 받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미술고등학교에서 만화과 교사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요즘 그는 꿈에 부풀어 있다. 또 지난해 어려운 살림을 쪼개 세종대 멀티미디어 애니메이션학과 대학원에 등록, 체계적인 미학공부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비장하리 만큼 남다른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성공하지 못하면 작가로서 생명력을 잃어버려 다른 호구지책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체계적인 미학공부를 계속하면서 농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작품을 계속해서 그려낼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