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침몰 사고 18일째인 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한 시민이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5일로 20일째.

실낱같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시신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초조감에 단 몇 시간도 잠을 이룰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

짧게는 4∼5일, 길게는 보름 이상씩 묵묵히 실종자 가족, 구조대원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

실종자를 가족의 품에 안겨주겠다는 일념으로 거친 바닷속을 오늘도 서슴없이 뛰어드는 잠수사들.

기약 없는 기다림의 나날이 고통스럽지만 서로가 아픔을 보듬고 도닥이며 오늘 하루를 함께 이겨낸다.

◇ 하루가 시작도 끝도 없다…실종자 가족들

아침잠이 많은 딸의 등교 준비를 돕는 건 0늘 전쟁이었다. 어린 애처럼 이불을 걷어차고 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는 세상 모르고 자던 딸. 여러 번 흔들어 깨워도 엉덩이만 이리 굴리며 짜증을 내던 딸.

'아차, 정조 시간이 새벽 5시 16분이랬지….' 실종자 가족 김모(여)씨는 4일 새벽 소스라치듯 눈을 떴다.

지난밤 내 딸은 저 차디찬 바다 속에서 엄마를 찾았을 것이다. 악몽 같은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오전 7시, 김씨는 슬리퍼를 대충 신고 실종자 가족 대책본부 천막으로 향했으나 금세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이날 새벽 시신이 수습된 6명의 희생자는 모두 남학생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쓰러져 누웠다.

매일 오전 9시에 대책본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해경 브리핑은 오늘은 20여 분 만에 끝났다.

가족들은 '미개방 격실을 빨리 좀 열어달라', '한번 거쳐 간 곳도 다시 한번 봐 달라'는 호소를 며칠째 반복하고 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책본부 안을 서성거리거나, 게시판에 붙은 사망자 수습 명단을 보며 절망하고, 부둣가 천막 뒤로 가서 혼자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오후에는 수습한 시신 중에 자식을 확인한 한 가족이 이불 꾸러미와 옷 가방을 양손에 들고 자원봉사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팽목항을 떠났다.

김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항구 오른편에 멀리 뻗어 있는 등대로 밑으로 가 난간을 붙잡고 흔들어대며 오열했다.

가족이 갖다 준 죽사발을 앞에 놓고 몇 숟갈 뜨다 말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 하늘은 저렇게 푸르고 깨끗한데 가슴속은 먹구름만 짙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 세월호 사고 15일째인 30일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7시 대책본부에서는 열린 브리핑에서는 시신 유실 방지책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왠지 장황하게만 들렸다.

사고 해역의 날씨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게시판에 붙었다.

또다시 시작된 기다림의 밤. 텐트 안에서 잠들다 깨기를 반복하다 찾아온 새벽, 실종자 가족들의 하루는 시작과 끝이 없다.

◇"함께 아파할 뿐 더 해줄 것이 없어요"…50대 자원봉사자

세월호 침몰사고 나흘 뒤인 지난달 19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김모(52.여)씨.

김씨는 "미안해요, 더 해드릴 것이 없어 더 미안할 뿐이예요"라며 그저 미안하다고만 했다.

보름 남짓 진도에서 실종자 가족을 지키며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정작 해드리는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서 한걸음에 내달려 왔다는 김씨는 새벽 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3시, 집에서는 단잠에 빠져있을 시각이지만 김씨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다.

십 분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순간,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한다.

오늘 아침 메뉴는 닭곰탕. 어젯밤 대충은 준비해놨다곤 하지만 손이 가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김씨는 실종자 가족 등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20여명이 요리, 배식, 설거지 등으로 나눠 일하고 있다.

메뉴는 쇠고기 무국과 육개장, 미역국 등 가급적 집에서 먹듯이 편안하게 하려고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가족들이 잠깐이나마 슬픔을 누그러뜨렸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차마 뭐라고 말씀도 못 드릴 정도로 낙담하신 분이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음식을 드리는 것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김 씨는 또 미안하다고 한다.

오후에는 지쳐가는 가족들을 생각해 전복죽을 준비했다. 반찬거리를 다듬고 배식 준비를 마치면 다시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식사를 제공하는 한켠에서도 가족들이 불편한 게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어떻게든 입맛을 찾게 하고 싶어 약 고추장도 식탁 한쪽에 준비했다.

배식 과정에서 김씨가 빠뜨리지 않는 말이 있다. "혹시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구해 드릴게요"이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하지 않느니만도 못하다고 생각해 절대 하지 않는다.

혹여나 언짢은 일을 당해도 최대한 담담히 배려한다.

▲ 세월호 침몰 보름째인 30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민.관.군으로 구성된 구조대원들이 언딘(UNDINE)사의 구조전문 바지선에서 구조작업을 신중히 협의 하는 가운데 일부 잠수사들이 정조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색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군인이나 봉사자 등을 위해 야식도 준비한다.

이러니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서너시간뿐이다.

체육관 주변에 친 텐트 속에서 쪽잠을 청하는 그는 지친 몸을 눕히기 전에 기도를 했다.

'해가 떠오를 내일, 이들 가족에게 절망 대신 희망을 주세요….'

◇ 바짝바짝 입 타들어가는 하루…사고현장 잠수사

매일 한 번꼴로 이뤄지는 잠수에 맞춰 하루 일과가 짜여지는 잠수사는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를 잊은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아닌 '다음 잠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새벽 4시 40분께부터 시작된 잠수작업조에 편성돼 다른 팀원들과 함께 세월호 선체를 더듬다 7시께 물 밖으로 나온 언딘 소속 민간잠수사 박명철(가명·39) 씨는 함께 수중으로 들어간 해경잠수사와 함께 잠수복을 벗자마자 컨테이너 박스로 향했다.

정조 시간 막판에 거센 조류를 헤집고 수중으로 나온 탓에 머릿속은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막 내린 듯한 어지럼증 탓에 지친 몸에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얼핏 잠이 들었지만 오전 9시 30분 "밥 먹으라"는 소리에 눈곱도 못 떼고 잠수사들이 따닥따닥 붙어 자던 컨테이너에서 빠져나왔다.

잔뜩 흐린 하늘에 햇빛 한 줄기 비추지 않아 가뜩이나 차디찬 바닷바람이 오늘따라 더 춥게 느껴졌다.

고생한다며 자원봉사자들이 가져온 따뜻한 국과 밥이 눈앞에 차려졌지만, 목이 잠겨 채 몇 술을 못 뜨고 내려놨다.

왠지 모르게 며칠째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바지선 한쪽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려다 그만두고 감기약을 털어 넣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함께 담아 내뿜으며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바지선 뒤에서 잠수장비를 매고 대기하는 다른 잠수팀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해군, 해경 잠수사와 선체 상황 정보를 주고받고, 스마트폰으로 본 바깥소식을 놓고 서로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정조 시간이 됐다.

박씨는 새벽 잠수를 한 뒤라서 쉬는 시간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잠수사 공기공급선을 끌어주고 잡아주는 '텐더'를 자청했다.

그러고는 다시 새벽부터 시작되는 작업을 위해 좁디좁은 컨테이너 안 홑이불에 몸을 뉘여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어지러운 불빛과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깬 박씨는 "기필코 해내고야 만다"며 수십 번 주문을 외고는 또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