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월호 참사. 수원과학대학교 자원봉사단이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설거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임열수·하태황기자 |
故 박지영씨 후배들도 의기투합
형제나라 터키 요리사 '케밥조리'
천안함 사고 유가족 아픔 나눠
잔인했던 4월, 진도 팽목항의 바람은 매서웠다.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 범벅이 된 뺨을 세차게 때리는 칼바람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실내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은 가족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기댈 곳 없는 그들의 마음에는 차가운 바람이 들었다. 극한의 분노, 불통, 슬픔과 싸우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조그만 틈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고 다시 해가 비쳤다. 절대 물러날 것 같지 않던 긴 계절을 지나온 진도의 5월에는 또다시 꽃이 피었다.
![]() |
▲ 세월호 참사.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의 세탁물을 말리고 있다. /임열수·하태황기자 |
중앙대 체육사(史)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용덕(37)씨는 지난달 30일 진도 팽목항에 어묵 부스를 만들고 자원봉사에 나섰다. 최씨는 지난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때도 붕어빵 봉사를 한데 이어 이번에도 진도 팽목항을 찾아 봉사를 펼쳤다.
그는 세월호 사고후 텔레비전을 통해 밤마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항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고 어묵 자원봉사를 생각해 냈다. 그는 박사과정은 물론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결혼까지 뒤로 미룬 채 팽목항으로 달려왔다. 최씨가 나눈 어묵은 팽목항에 있던 사람들의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녹이는데 일조했다.
부산 장로회신학대 하정미 박사는 심리상담실 부스를 운영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도왔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가족을 잃은 고통과 정부의 무능에 분노하는 가족들을 보고 하 박사는 진도로 향했다.
하 박사가 심리상담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경기도에서 진도실내체육관 2번 출구 주차장에 부스를 마련해줬다.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심리상담을 도맡으며 밤늦게까지 부스를 지켰다.
![]() |
▲ 세월호 참사. 안산시 자원봉사단이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등에게 급식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임열수·하태황기자 |
죽음의 문턱에서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채 사망한 세월호 승무원 고(故) 박지영(22·여)씨의 대학 후배들도 진도로 향했다. 수원과학대학교 재학생들은 선배의 희생정신을 잇고 싶은 마음에 지난달 22일부터 진도를 찾아 봉사를 해왔다.
김유리(26·여) 총학생회 부회장은 "언론을 통해 의로운 승무원이 우리 학교 선배인 것을 알았다"며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실종된 학생들과 가족들을 돕고자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진행된 박씨의 발인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학생들과 학교측은 박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후 범학생모금운동을 통해 모은 성금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수원과학대측은 "끝까지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 희생한 박씨를 기려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추모비를 세우거나 고인의 이름을 딴 장학금 개설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
▲ 세월호 참사.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안산 외국인 근로자가 케밥을 무료배식 하기위해 준비하고 있다. /임열수·하태황기자 |
지난달 24일 진도체육관에는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온 자원봉사단이 단연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한국에 사는 터키 요리사들로 실종자 가족들에게 나눠줄 케밥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들이 펼친 소형 트럭에는 케밥 조리용 도구가 갖춰져 있었음은 물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라는 문구도 써 있었다.
케밥을 만들던 에네스 카샤(31)씨는 "세월호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에 진도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샴스 사밈(26)·파란기스 마하크(25·여)씨가 진도체육관에 와 청소를 하는 등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선문대에 입학해 각각 생화학,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로 약혼을 한 사이다.
사밈씨는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다"며 "힘들더라도 실종자 가족들이 기운을 낼 수 있도록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전했다.
# "우리도 같은 아픔을 겪었답니다"
지난 3일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가족이 진도 팽목항에 왔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자녀를 잃은 유족들로 연휴기간 내내 팽목항과 체육관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벌였다. 두 사고에서 희생된 학생들은 모두 또래들로, 자녀를 잃은 슬픔의 무게는 같았다.
천안함 사고 유가족들도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이들 유가족 30여명은 3박4일동안 체육관에 머물며 청소, 세탁, 배식 등 5개조로 나뉘어 자원봉사를 했다.
이인옥 천안함 46용사 유족협의회 회장은 "천안함 사고때 우리 유족들은 온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기운을 낼 수 있었다"며 "이곳에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잘 알것 같다.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을 것이기에 순수하게 봉사만 하겠다"고 말했다.
/윤수경·강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