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때. 할머니나 엄마의 옛날이야기에 취해 잠에 녹아들어갔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때로는 형이나 누나가 읽어주는 동화책속의 세계를 꿈꾸며 무거워져 오는 눈꺼풀과 싸우다가 곯아떨어지곤 했던 그 시절. 그 추억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평생토록 가슴한곳에 아로새겨진 정(情)으로 남아있게 된다.
아파트촌 한곳에 자리잡아 삭막해보이는 우리네 초등 교육 현장. 큰누나, 큰언니같은, 어느때는 엄마같은 우리네 자식들의 선생님.
그 선생님들이 '동화읽는 교사모임'을 갖고 교육현장에서 동화읽어주시는 어머니의 기억을 심어주고 있다. 쑥쑥 커가는 아이들은 맘을 살찌게 하는 '이야기 보따리'를 챙겨오실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즐겁기만하다.
지난 18일 저녁 기자는 2주에 한번씩 열리는 '동화읽는 교사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원시 권선구 화서역 근처의 한 서점을 찾았다.
몇평 안될 자그마한 공부방에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겨울방학 기간이고 개학준비에 바쁘지만 지난 3년간 거의 빼먹지 않은, 빼먹을 수 없는 일상으로 변한 모임에선 뜨거운 열기마저 느껴졌다.
강백향(35) 수원화양초 1학년 달님반, 이현신(37) 의왕부곡초 3학년 7반, 인경화(30) 수원숙지초 6학년 개나리반, 안현숙(36) 수원당수초 4학년 4반, 이해연(36) 용인용마초 2학년 5반 담임선생님과 어린이 전문서점 '으뜸과 꼴찌'의 여주인인 김순례(37)씨 등 6명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제2장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편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들의 관심은 처음에는 우리 아이였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줄 수 있고, 읽어줄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동화읽는 어른모임'에서 자주 만나던 강백향, 안현숙, 이현신 선생님등과 김순례씨는 의기투합, 교사모임을 결성했다.
강선생님은 “으뜸과 꼴찌의 단골 손님들이 모여 동화읽는 어른모임을 했었는데 아이들 또래도 비슷하고 하다보니 친해졌다”며 “새로나온 책을 함께 토론하던게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현신 선생님은 “둘째를 가져 휴직중이었는데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복직해서는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좋은 책을 읽어주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중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모임은 단순히 아이들의 독서지도를 위한 연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엄마들이 친구이다 보니 아이들도 친구로 자란다. 핵가족 시대에 이 모임을 통해 함께사는 삶을 익혀간다. 방학때면 아이들은 각 가정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유익한 방학을 보낸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이현신 선생님의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아이들과의 모임을 갖는 이 선생님은 올해 '손큰 할머니의 만두만들기'를 주제로 정했다. 각자의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온 식탁도 마련했다.
지난 여름 안현숙 선생님은 칠보산 밑 숲속의 놀이동산을 찾는 캠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이들은 칠보산 계곡물을 막아 만든 수영장과 너른 마당에서 즐겁게 놀고 엄마들은 밤새워 얘기꽃을 피운다. 이제 아이들도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며 밝게 자라는 모습에 엄마들의 웃음꽃이 그치지 않는다.
교사모임에 인경화 선생님이 참여하며 모임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모임에서 발전했지만 교사로서의 직분은 모임을 활발하게 했다. 누가먼저랄 것 없이 학교현장에 복귀, 스승으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좋은 책을 골라주고 읽어주는 일을 반복했다.
이 모임은 책을 많이 읽고 연구도 많이한다. 최근엔 동화책은 물론 '어린이와 그림책'(샘터) '아동문학론'(교학사) '슬픈거인'(문학과 지성사) '어린이 책의 역사'(시공사) 등 동화책과 이론서를 읽고 토론했다.
그러나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동화책을 읽고 연구하는데 있지않다. 단순한 교사들의 책읽는 모임이 아닌, 생활과 교육의 조화를 이뤄낸데 있다.
선생님들은 교육현장으로 돌아간뒤 독서지도의 어려움을 크게 느꼈다. 대중매체에 노출된 초등학생들에게 책에 대한 재미와 사고를 키워주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공통된 상황. 그러나 어려운 만큼 보람은 무척 컸다는게 선생님들의 설명이다.
인경화 선생님은 “사실 모임에 참여하기전에는 막연히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었지 제대로 읽어줘 본적이 없었다”며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나로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이런 모임의 결과일까? 지난 4월 경기도교육청에서 실시한 '제2회 독서지도실천사례 발표대회'에서 선생님들의 사례는 모범사례로 뽑혔다. 이현신 선생의 '함께 책을 읽으며 친구가 된 우리', 강백향 선생의 '책 읽어주는 선생님', 안현숙 선생의 '독서력 신장으로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교실', 이해연 선생의 '재미있는 독서활동으로 책과 친하게 되
아이들 꿈이 무럭무럭
입력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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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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