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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복 객원기자 |
터널 이루는 등산로 동화적 풍경 연출
체력소모 적어 남녀노소 산행하기 수월
억새 가득한 산 고스락 또다른 매력
놀부흥부 살았던 성산마을 둘러볼만
박 타는 형상 조형물·망제단 '눈길'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의 철쭉
현란한 색채를 자랑하는 철쭉이 한창인 계절이다. 일반적으로 철쭉을 보기 위해서는 두어시간의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남원 봉화산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복성이재에 내려서 15분이면 그 황홀한 풍경을 한아름 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봉화산은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 경남의 함양군에 이르는 산으로 능선의 절반이 철쭉으로 채워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곳 철쭉의 붉고 선명한 색에 매료된 사람들은 매년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찾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키를 넘는 크기로 인해 터널을 이루는 등산로를 걷다 보면 동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 정도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선 더없이 좋은 조건을 지닌 산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쉽게 오를 수 있기에 더욱 사랑받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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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복 객원기자 |
복성이재 주차장에서 능선까지는 약 2주간의 격차를 두고 개화를 하는 철쭉나무가 온 산을 뒤덮은 채 상춘객들을 맞아준다. 복성이재 주차장에 내리자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쉼없이 나오는 샘터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두고 산길을 오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꽃밭을 메우고 들불처럼 온 산으로 퍼져간다.
이른 아침에 올랐던 이들과 스쳐가도 넉넉한 계단길로 오른다. 오름길 중간의 갈림길은 오른편의 매봉방향과 정자가 있는 왼편길로 나뉘는데 모두가 천상의 화원에 이르는 길이다. 길은 가파르지만 천천히 어느 누구도 서두르라 하지 않는다. 적당히 땀이 옷에 배일 즈음 매봉에 도착하는데 동편으로는 개인농장인지라 철조망이 쳐져 있다.
등산객들이 농작물에 손을 대는 탓일 게다. 매봉에 서면 비로소 능선의 이편저편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다른 무엇보다도 꽃동산을 내려다보는 맛이 있는 봉우리다.
"옛날에는 화전도 부쳐 먹고 술도 담가 먹던 진달래는 참꽃이라 했고 철쭉은 독성 때문에 먹을 수 없어서 개꽃이라 했는데 진달래보다 더 고운 빛이 나서 연달래라고도 했어요"라고 한만수(74)씨는 운을 떼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헌화가(獻花歌)'에 나오는 꽃이 이거예요. 철쭉꽃…"이라고 한다.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가 되어 부임해 가던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깎아지른 벼랑이 병풍처럼 바다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높이가 1천장(丈)이나 되는 벼랑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수로부인이 "저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없느냐"라고 하며 꽃을 원했다.
그러나 종자(從者)들은 모두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며 나서지 않았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옹(老翁)이 부인이 꽃을 바란다는 말을 듣고 노래를 지어 부르며 꽃을 꺾어 바쳤다는데 이것이 바로 신라향가의 하나인 헌화가이다.
<헌화가>붉은 바윗가에 암소를 끌고 온
이 노인이 부끄럽지 않으시다면
이 꽃을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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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복 객원기자 |
매봉을 지나면서 능선길은 심하게 요동치는 것 없이 비교적 걷기 수월한 길이다. 치재, 꼬부랑재, 다리재 등 여러 고갯마루를 지나지만 봉화산까지 크게 솟구치거나 내려서는 구간이 없는 까닭에 체력의 소모 또한 크지 않아서 걷기 편한 길이다.
하지만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하늘을 가리던 철쭉도 사라지고 머리를 덮을 만한 나무가 나오질 않는다. 한여름이라면 고스란히 햇볕에 노출되어 걸어야 하는 것이다. 봉화산 고스락은 아예 드러내놓고 민둥산이다. 삐죽이 솟은 거대한 정상석 아래로 억새만이 가득한 정상 주변은 철쭉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능선의 북쪽으로는 장안산과 남덕유산, 기백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펼쳐진 철쭉능선 너머의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의 능선이 펼쳐져 있다. 백두대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놀부와 흥부가 살았던 성산마을
봉화산 아래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났다는 곳이고, 아영면 성리 마을은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발복지로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흥부 부부가 박을 타는 형상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사금 채취장으로 전해지는 새금모퉁이, 흥부가 허기로 쓰러졌을 때 흰죽을 먹여 살린 은인에게 논을 사주었다는 흰죽배미와 놀부가 흥부집을 찾아왔다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인 노디막거리, 흥부와 놀부가 살았다는 장자골 등이 주변에 있기에 찾아가기도 쉽다.
뒷산에는 덕을 쌓아 흥부의 모델이 된 박춘보의 무덤과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는 망제단이 평화로운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데, 이것은 1992년 1월 아영면 성리에서 '흥부전'의 주인공 것으로 추정하는 비석을 발견하고 마을에서는 일제 말기까지 전승했다는 흥부제사를 지내고 있는 곳이다. 봉화산 정상에 오른 후 구상리로 하산을 하면 흥부마을에 닿는다.
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