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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6년 전의 '1달러=100엔=1천원' 시대로 돌려놓은 원화 강세로 수출 전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환율은 반등을 시도했으나 쏟아지는 달러화 매물에 밀려 전날보다 0.1원 오른 1,022.6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오후 시민이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앞에 설치된 조형물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
환율 하락 속도는 주요 32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일제히 원화 강세를 점쳐 급격한 환율 하락에 대한 외환당국의 부담이 커졌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이후 원화 가치는 3.51% 상승했다. 이 때문에 환율은 달러당 1,058.5원에서 1,024.4원으로 30원 넘게 하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최저치 경신을 이어간 환율은 지난 9일 장중 1,020원까지 하락, 당국이 다급하게 개입해 환율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선 당국이 1,020원을 1차 저지선으로, 1,000원을 2차 저지선으로 설정하고 환율 급락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국의 방어 노력에도 올해 하반기에는 환율이 900원대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해외 주요 IB 가운데 미쓰비시도쿄UFJ는 연말에 환율이 975원으로, 웰스파고는 990원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IB들도 예상 수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제히 환율 하락을 점쳤다. 하락 추세가 내년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외환은행은 이달 월례 보고서에서 "시장 수급상 달러화 공급 우위에 따라 환율이 소폭 하락할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환율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외에서 환율 하락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는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국제 시장에서 달러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신흥국 통화 중 원화가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원화가치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인식도 환율 하락을 부추기는 요소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원화가 저평가돼 있으며, 한국 정부를 겨냥해 외환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거듭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한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으며, 올해도 줄곧 흑자 행진이다.
대규모 경상 흑자는 환율 추가 하락의 요인이면서 원화가 저평가돼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도 여겨진다.
김영익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흑자가 6.1%로 지나치게 높다"며 "그만큼 원화가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환율 하락에 쏠리는 환투기가 늘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며 "이는 환율을 더 낮추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이 하락 흐름을 탔을 뿐 아니라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삼성선물이 집계한 32개국의 최근 1개월여간 통화가치 상승·하락폭을 보면 원화(3.51% 상승)가 가장 많이 올랐다.
한국과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 엔화(1.96% 상승)나 대만 달러화(0.92% 상승)보다 상승폭이 훨씬 크다.
다만, 하반기 들어 미국이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나서 환율이 반등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올해 3분기나 4분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어떡해서든 세자릿수 환율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므로 환율의 추가 하락이 급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은 당국이 1,000원을 하한선으로 설정했을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관측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