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무명선수, 발재간이 현란한 것도 아니고, 차붐처럼 주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그저 성실하기만 했던 평범한 선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박지성을 그렇게만 단정했던 에인트호번 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홈경기가 있을때 홈팬들은 그에게 야유까지 보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홈경기에서 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곧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관차처럼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그에게 홈팬들은 열광했고, 그만을 위한 응원가인 '위쏭 빠레'를 헌정했다. '위쏭'은 지성, '빠레'는 박의 네덜란드 발음.

에인트호번에서 세 시즌동안 85경기에서 15골을 터트렸던, 특히 2004~2005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강팀 AC밀란을 상대로 인상적인 골을 터트린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 퍼거슨은 박지성을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 리거로 만들어 주었다. 폭발적인 활동량과 스피드, 위치선정 능력과 수비가담 능력, 무엇보다 팀 플레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그에게 맨체스터 팬들은 '두개의 심장' '산소탱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고, 그 유명한 '개고기 송'을 헌정했다.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어도 너희 조국은 개를 먹지. 그래도 괜찮아. 빈민가에서 쥐를 잡아 먹는 리버풀 놈들보단 나으니까." 초창기 이 노래 때문에 인종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리버풀과 역사적 라이벌 관계인 맨체스터 팬들에게 이 응원가는 박지성의, 박지성을 위한 '사랑가'였다. 2012년까지 맨유에서의 일곱 시즌을 보내는 동안 박지성은 총 207경기에 출전해 29골 22도움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박지성은 맨유의 4차례 정규 리그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 차례 리그컵 우승을 이끌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국가대표로서 박지성은 2002 월드컵 4강을 비롯해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사상 최초 원정 16강 달성에 기여했다. 그는 A매치 100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한 한국 축구의 '캡틴'이었다. '영원한 캡틴'인 그가 은퇴를 선언했다. 고질적인 무릎부상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오직 국가대표 선수가 목표였고, 윤정환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던 박지성. 그가 있어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고마워요! 캡틴. 굿바이! 캡틴.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