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인간의 이기심이
불안의 원인 이란다
남을 도와 주거나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삶이
불안을 야기한다고…


요즘 한 동안 소식없이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전화를 자주 주고받는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도 있고 카톡의 편리함 덕분이기도 하다. 캐나다 중부 도시 사스카츈의 새로 낸 스시 가게도 잘 되는 듯해 전에 비해 음성도 한결 밝다. 직업도 다르고 일찌감치 이민을 간 탓에 대화 내용이 옛날에 머무는 한계는 있다. 현실감도 없으며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묘한 느낌 하나가 올라온다. 이쪽 사회에 익숙해 있다 보니 놓친 것 하나, 즉 한국적 삶 속에서의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법이나 규정에 덜 얽매여 있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이다. 좋게 말해 일종의 여유나 융통성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나 자신도 오랜 외국 생활을 했지만 그쪽 나라들과 비교해서 한국이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법이나 규정을 적당히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미국생활을 돌이켜 보면 숨통이 막힐듯한 그 법질서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파킹을 잘못했다가 속절없이 눈앞에서 내차가 끌려가는 걸 봐야 하는 잔인함, 아이가 가볍게 일일 체험하는데도 보험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 도대체 우리 식으로 "봐 준다"는 게 통하지 않는 답답함,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끽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기다리는 미련함, 근무 시간이 끝나면 하던 일 그만 두고 일어서는 냉정함, 경찰 폴리스 라인의 그 엄정함, 친구의 식당 하나 오픈에 지루했던 그 심사의 까다로움. 아마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가 규정대로 움직이려면 이런 속성들을 가진 법질서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것이다.

캐나다 친구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말했다. 하나는 물음표의 삶, 다른 하나는 느낌표의 삶. 물음표의 삶은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며 뭔가를 더 알아내고자 하는 '생각'이 중심이 되는 삶이다. 느낌표의 삶이란 수치로나 손익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멀찌감치 돌아앉아 보는 '사색'이 중심이 되는 삶이란다. 이 친구는 오랜만의 전화에서 나이 듦에 대해 얘기한 것이겠지만 나는 이 분류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느낌표의 삶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거시적으로 한번 크게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느슨한 법질서로 살 것인가, 우리 문화의 가치나 태도에 진짜 문제는 없는가, 정부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각자 삶의 태도에 문제는 없는가.

캐나다 친구가 말했다. 인간의 이기심이 불안의 원인이란다. 남을 도와주거나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삶이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그런 거라면 어느 누구도 타인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쪽에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바쁜 가게 일에 잠시 나와 쉬다가 바닷물 속에 갇힌 아이들 생각하면 안타깝고 몸서리가 쳐지고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다고 한다. 생각하기가 싫단다. 이미 그렇게 된 아이들 놔두고 책임을 따져본들 뭐 하겠냐, 정부며 회사 이곳저곳 욕하고 분노하고 그러다 세월이 가면 예전에도 그러했듯 다 잊어버릴 것 분명하지 않겠나, 어디 세월호 뿐이겠나, 어디를 파본들 세월호보다 나을 게 있겠나, 질퍽질퍽하기는 매 한가지가 아니겠냐고 한다.

한국 사회 곳곳에 이기적인 전문성만 난무하고 리더십에도 사색이 없는 전문성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법질서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되며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잘못 받아들인 탓이 아닌가 한다. 친구가 이리저리 풀어준 말에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진정한 사색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집단적 우울이나 분노, 사건 대처 방식에 있어 국가개조 수준의 처방이 나오는 것도 이기심 노출에 따른, 그리하여 불안에 사로잡힌 범국민적 신경증인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에는 하나같이 법질서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우리 모두의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캐나다 친구는 이민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이십년 전에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더 영적이고 순수하단다. 이 말이 한국적 삶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아 감사하다는 뜻이라면 정말 우리 사회는 국가 수준의 개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