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주부 김옥주(53)씨의 인생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허리디스크와 고혈압에다 공무집행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8가지 죄목으로 올해 초에는 검찰에 기소까지 된 것이다.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예금 2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화근이다. 돈을 떼인 사람들 대부분이 자갈치시장 인근의 60, 70대 노인들이어서 김씨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사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에는 돈 잃고 몸까지 망친 기막힌(?)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저축은행사태는 이후 26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등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로 비화되었다. 피해자수가 10만명을 넘고 사회적 비용만 물경 27조원에 육박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들의 '벼룩 간 빼 먹는' 악질범죄와 부실한 금융감독이 빚은 합작품이나 '88클럽'규정이 결정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에 재정경제부는 "영업활동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되 건전성 감독은 더욱 강화한다"며 98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제로베이스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88클럽'인데 자기자본비율 8%이상, 고정 이하(연체 3개월) 여신비율이 8%이하의 조건을 충족한 우량저축은행들을 지칭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모든 저축은행에 한 법인에 최대 80억원까지만 대출하도록 강제했으나 '88클럽'조건을 충족한 은행에 한해 대출제한을 풀어주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겨냥한 저축은행업계가 정부에 집요하게 로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은 88클럽 가입을 위해 후순위채를 경쟁적으로 팔았으나 부동산거품 붕괴로 막대한 혈세 낭비와 서민경제를 거덜 냈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지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도를 고친 지 6년만에 사고가 터졌으나 관련자들 모두는 이미 공직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울린 동양증권 불완전판매사건도 규제완화가 빚은 해프닝이다. 사기나 다름없는 범법행각에 또다시 서민들만 당했다.

세월호 대참사는 압권이었다.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있던 여객선 선령을 2009년에 다시 30년으로 늘렸다.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선령규제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서둘러 국토해양부에 개선책 마련을 지시함으로써 민원 6개월만에 해운법 시행규칙을 바꾼 것이다. 해운사들은 선령제한에 따른 업계손실액이 2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물 배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가 선주들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에 낸 '현행 여객선 선령제한의 적정성 판단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선박은 구조적 강도를 결정짓는 선체의 강판, 항해장비의 노화가 함께 발생한다"고 지적했으나 그뿐이었다. 불과 200억원의 추가이익을 얻자고 무리하게 규제를 풀어준 탓에 이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총체적 부실을 안은 채 침몰한 것이다. 고질적인 권경(權經)유착이 초래한 비극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했다. 또한 규제는 시소와 같아서 제거할 때 좌면우고(左眄右顧)는 필수적이다. 국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작금 정부는 '대못' 운운하며 군사작전 하듯 서둘러 제거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혼 없는 천민자본보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공복(公僕)들이 더 밉상이다. 생선가게 고양이보다 못한 인사들이 공직을 독식한 인상이니 말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재발방지 다짐도 국정최고책임자의 구태의연한 립서비스 쯤으로 폄훼하는 듯하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똑 같은 연출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니 말이다.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또다시 날벼락(?)을 맞을지 전전긍긍이다. 용한 무당을 찾아 액막이굿이라도 벌여야 할 지경이다. 종합소득세 납부의 달이다.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느낌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