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무총리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조항에서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이른바 '책임총리'의 근거조항이다. 그러나 역대 총리는 거의 내각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치기 일쑤였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 명망가형 총리, 화합형 총리, 관리형 총리, 정무형 총리 등 총리의 출신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붙인 작위적인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정국이 요동치고, 민심이 이반될 때 총리를 포함한 내각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행위는 민심의 소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총리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큰 이유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정서에 부합하며 시대정신에 응답할 수 있는 인물을 써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많은 성찰과 뼈저린 회한을 남기고 있다. 정경유착과 민관유착이 대참사를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관피아의 혁파 없이는 한국사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의 처방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공정한 사회로의 개혁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돌아보고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에 대한 구분 없는 몰아치기식의 진단과 처방은 또 다시 많은 모순을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참사가 우리 사회에 치열하게 던지고 있는 화두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관료와 민간의 유착은 왜 생겼으며 이념적 간극은 왜 더 벌어지는가에 대한 숙의이다. 부정부패가 왜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적 근대화는 국가의 압도적 우위를 결과했으며, 시민사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산업화의 명분으로 인권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과 인간의 가치보다는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절대시되는 물신주의가 배태되었다. 국가권력과 관료가 주도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관과 기업의 유착은 애당초 예정된 수순이었다. 관피아는 단순히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도성장은 시장물신주의에 입각한 황금만능주의의 극대화를 가져왔고 이는 관료와 민간의 유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양극화는 심화됐고, 이념과 지역 차원의 불화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상위 소득이나 하위 소득 계층 가릴 것 없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유난하고 유별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치부할 수위를 벗어난지 오래다. 그래서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민주화가 헌법 조항에 들어가고, 대선 과정에서 여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것이 아닌가. 대통령 담화가 있은 다음 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대통령 담화의 조치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다음 달 초까지 마련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여전히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관료주의의 획일화 모습이다.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을 다짐했고, 공정과 법치에 입각하여 총리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좋은 말들이다. 공직사회의 대부분을 검찰로 지낸 사람다운 얘기이며 부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찢기고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 화합과 탕평의 정신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모든 처방은 임기응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 척결과 법치, 공정은 검찰권의 행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릿발 같은 법치 이전에 한국사회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기강의 확립은 일시적인 사정 드라이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안대희 총리 내정자가 놓치면 안 될 부분이다.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지성과 냉정한 상황인식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연결될 때만이 책임총리도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대희 내정자는 검찰총장이 아닌 국무총리직을 수행해야 한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