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다 밥을 먹고, 그루밍(고양이가 스스로 하는 털 손질)을 하던 고양이가 말한다. "우리집 식구는 하루 23시간 잠자는 한치, 두치 형님과…" 다음 칸에서 버튼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고양이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한 인간입니다." 귀가한 그녀는 작은 사과가 담긴 검은 비닐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꽁치, 하루 종일 뭐 하고 놀았니?" 고양이는 말을 잇는다. "인간이 유난히 작은 사과를 사오는 날은…" 내레이션을 하는 고양이 꽁치는 사과봉투로 장난을 치고, 그녀는 "꽁치"라고 크게 소리 지른다. "아주 슬픈 날이거나 몹시 화난 날이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 그녀는 고양이 꽁치에게 소리를 지른 게 미안했는지, 고양이를 안고 말한다. "소리쳐서 미안해."

'빵 굽는 고양이' 1화 오프닝 시퀀스다. 그녀는 오늘 회사를 그만, 아니 짤렸다. 기대했지만,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오히려 후임을 안 뽑아줘 인수인계가 안된 것도 그녀에게 책임지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작고 상처나 일찌감치 솎아진 사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과를 사와 애플타르트를 굽는다. 달콤한 걸 먹는 동안은 슬프지 않으니까.

한혜연 작가의 '빵 굽는 고양이'에는 청년 세대의 가혹한 현실과 달콤한 제과제빵과 그리고 사람과 함께 소통하는 반려동물의 일상이 이야기 안에 함께 한다. 현실은 서글프고 치열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은 달콤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서정적이다. 진짜 서정은 현실에서 오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다. 많은 이들이 서정은 현실과 거리가 먼 자리에 있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서정은 현실에서 나온다. '빵 굽는 고양이'의 서정은 20대 비정규직 해고자 그녀의 현실에서 나온다.

위로와 음식, 익숙한 비교다. 음식, 그 중에서도 달콤한 빵과 과자는 더욱 그러하다. 음식만으로도 훌륭히 위로받을 수 있는데, 작가는 여기에 반려동물을 함께 놔두었다. 길을 잃어버렸거나, 버림 받은 고양이가 장바구니의 한치 냄새를 맡고 가족이 된다. 그리고 이제 세 마리가 된 고양이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한다.

오늘 우리는 거대한 비극과 그 비극을 더 아프게 후비는 어떤 이들 앞에 홀로 서 있다. 이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서정이다. 진짜 서정은 현실을 은유하니까. 바로 달콤한 빵 레시피, 고양이의 꾹꾹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연대처럼. 이 험악한 시대에 우리를 위로하는 만화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웹툰으로 연재되었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애니북스에서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책의 모양도 작품만큼이나 따뜻하다. 흑백 만화를 그리던 시절이 선과 조금 달라진 한혜연 작가의 선을 보는 재미도 있다. 만화는 그녀가 언니와 함께 카페 '바바(BABA)'를 여는 것으로 끝난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도 기대되지만, 이번 만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오프닝 시퀀스를 장식한 막내 고양이 꽁치는 에필로그에 다시 등장한다. 꽁치는 자신이 진정되기 위해 꾹꾹이를 한다. 꽁치도 꾹꾹이를 하며 마음에 평화를 얻고, 그녀도 위로를 얻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위한 꾹꾹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