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TV에서 방영중인 '개과천선'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다. 거대 로펌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그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건전한(?) 변호사가 된다는 법정드라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펌대표 차영우는 능력이 출중한 판사 전지원을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우트 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지원이 고집을 꺾지 않자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히 15년 뒤 그자리(대법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각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로펌 대표가 공직을 움직일 정도로 막강하다는 뜻이다. 비록 드라마지만 이 부분에서 등골이 오싹했다. 실제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로펌의 힘은 이제 누구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은 이미 '로펌공화국'이 된지 오래다.

'법과 원칙'의 상징이었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조차 서 보지 못하고 낙마했다. 검사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여·야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의 실세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강단을 보였던 그였다. 검사와 대법관 시절 재산 공개때마다 항상 최하위권을 기록해 '안대희 그 자체가 청렴'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관행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전관예우.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평범하게 회사를 관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전관예우 공화국'이었다. 평범한 국민들만 몰랐을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공직에 전관예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통령도 나섰지만 과연 그 튼튼한 연결고리가 끊길지는 비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관료·검사·법관 출신 중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정홍원, 법무부장관 황교안, 외교부장관 윤병세가 모두 대형 로펌 출신이다. 이들은 공직에 있다가 퇴임한 후 로펌으로 갔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황 법무부 장관을 가리켜 "대형 로펌이 황 내정자가 고위 공직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16억원을 줬다면 전관예우에서 나아가 '후관예우', '쌍관예우'인 셈"이라고 몰아붙였었다. 현직에 있는 공직자들은 변호사나 회계사 개업을 하고 있는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총리나 장관으로 회귀하는 게 신경쓰인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전관예우'보다 더 염두에 두고 예우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관예우'다. 이같은 전관·후관예우가 문제가 되자 이를 금지하는 '공직자 윤리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퇴직한 고위 관료가 법무법인 등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하다가 다시 공직에 취임하는 경우 제한을 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일반 변호사를 개업하면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법의 허점이 있는 것이다. 야당이 최근 '안대희 방지법'이라 명명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5월 임시 국회 회기 전까지 발의하겠다고 한 이유다.

김능환 전 대법관. 그는 퇴임 다음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국민의 영웅이 됐었다. 그러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즉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5개월만에 대형 로펌으로 돌아갔다. 국민이 받은 충격은 컸다. 세상 일이 쉬운 게 없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첫째, 법원과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사회단체와 언론은 끝없이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 둘째, 국민들 즉 의뢰인이 전관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물에 빠진 의뢰인들에게 전관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승소한다는 그 '믿음'이 없어지지 않으면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안될 경우 마지막 세번째, 평생 공직에서 국가가 주는 녹을 먹었으니 이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비같이 청빈한 삶을 살아 달라고 감성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개과천선의 사전적의미는 '범죄자가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은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