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교사로 활동하던 때와 전교조 활동 당시의 이청연 당선자 모습.
첫 발령지 연천 20여년간 교단
전교조 설립 주도 해직되기도
보수성향 선거구 교육위원 당선
시교육청 등 견제·감시 활동
0.3%p差 낙선뒤 4년만에 꿈이뤄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자는 1954년 충남 예산군 광시면 구례리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4남1녀 중 셋째다. 아버지를 대신해 형인 이광연씨가 이청연 당선자를 뒷바라지했다. 형님 덕택에 다행히 홍성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홍성으로 '유학'을 갔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공부는 뒷전이었다. 선거캠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선거사무장도 그 시절의 친구다.

이청연 당선자는 홍성중·홍성고를 졸업한 뒤 재수 끝에 인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교대를 졸업하고도 교사 발령 적체때문에 1년반이 지난 1976년 6월에야 발령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개월만의 일이었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교단에 서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은 지금도 큰 회한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첫 발령지는 연천군 노곡초등학교로, 이곳에서 3년 4개월간 근무했다. 방과후 아이들 웅변 지도도 담당하는 등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당시 학교는 병영식 학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학교장이 사사건건 교사들 일에 간섭하고 트집잡고, 교사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똑같은 행동을 했다. 뭘 어떻게 바꿔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원래 그런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컸다.

1987년 9월 어느 날 매우 열정적인 후배 교사의 권유로 우연히 찾아간 주안5동 성당에서 그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이 생긴다.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교육 현실을 논하는 자리였는데, 그날 성당 앞에는 누가 참석했나 확인하려고 나온 교장·교감·교무주임 등이 있었다.

그날 모임은 결국 열리지 못했다. 이청연 당선자는 '학교 현장을 바꾸려면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1989년 교육 현장의 민주화와 교육 개혁을 위해 전교조가 설립됐다. 그는 주저없이 전교조의 일원이 됐다. 전교조 설립에 주도적이었던 1천500여명의 교사들이 1989년 교단에서 강제로 쫓겨날 때 이청연도 그곳에 있었다. 1994년 3월 복직될 때까지 4년 7개월을 '거리의 교사'로 살아야 했다.

1999년 7월 전교조가 합법화됐고 이청연은 2001~2002년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맡았다. 전교조는 항상 그의 활동에 뿌리가 됐다.

이청연 당선자는 2006년 인천시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선거구로 여겨지는 남동구·연수구에서 1등으로 당선됐다.

교육위원회 간사를 4년동안 맡아 '사랑방'으로 비난받던 교육위원회를 바로 세웠고, 끊임없는 연구와 소통으로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교육 행정을 견제·감시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천교육의 변화를 꿈꾸며 2010년 인천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3천351표(0.3%p) 차이로 낙선한다. 낙선 후 2011년 인천시 자원봉사센터 회장을 맡은 그는 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공공기관이 책임지지 못하는 공백이 어떤 것인지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청연 당선자는 올 2월 '진보 교육감 단일 후보'로 선출된다. 교육감에 다시 도전한 그는 3명의 보수성향 후보를 제치고 인천교육의 수장이 됐다.

/김성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