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배 시인
달머슴 새경 받아오는 아버지와
평생 바느질 하는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해
시인 아들이 어릴적부터 앓던
늑막염을 치료해줄 길이 없어
피고름만 쏟게 했었다


배티성지를 뒤로 하고 구불거리는 도로를 힘겹게 올라가면 배티고개에 이른다. 배티고개는 차령산맥의 중허리에 있다. 차령산맥은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가르며 서쪽으로 뻗어나간다. 배티고개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아득하게 안성 시가지가 보이고 좀 가깝게는 마둔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유월의 마둔호수는 저수량이 크게 줄어 호수다운 정취가 사라지고 없다. 유난히 봄가뭄이 심했던 터라 호수의 물을 농업용수로 써서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벌겋게 드러난 황토 바닥 어디쯤에 미리미 마을이 있었을 것이지만 위치를 짐작할 수 없다. 미리미 마을은 마둔호수를 축조하며 수몰된 임홍재 시인의 출생지이며 유년의 아스라한 기억이 숨쉬는 곳이었다. 안성시 금광면 장죽리의 자연부락이었던 미리미 마을은 배티고개를 한 마장쯤 내려오면 차령산맥 자락의 작은 계곡에 1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궁벽한 시골이었다. 궁벽하기는 했지만 이발소도 있고 구판장도 있고 시내버스도 드물게 들어오는 오지 아닌 오지였다.

미리미 마을은 임홍재 시인의 지극한 가난과 지극한 슬픔과 지극한 눈물로 얼룩진 땅이다. 그곳에서 안성농업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서라벌예술대학으로 유학했으니 문학에 대한 열정과 미몽으로 수없는 밤을 배티고개에 묻었을 것이다. 유년기의 배곯았던 기억과 사춘기의 병고와 청년기의 절망을 간직한 땅이었던 미리미 마을은 1970년 마둔호수가 축조되며 호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마을이 수몰될 때쯤 시인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조문학'에 '토속 이미지'로 추천을 완료하여 시조시인이 되어 있었다.

마을이 수몰되자 시인의 양친은 개산면 현수리로 이주했다가 조카들이 살고 있는 장죽리, 장재울 마을로 이사했다. 조카네 집에 얹혀살던 양친은 바로 옆집을 사서 거처를 정한다. 서울살이를 하던 임홍재 시인이 장재울 마을을 몇 번이나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197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바느질'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염전에서'가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한다. 가난하고 늙은 양친에게 시인 아들 홍재는 커다란 재산이었을 것이고 자존심이었을 것이고 자랑이었을 것이다. '달머슴 새경 받아 한 몫에 져다 부리고 돌아온 아버지'와 '청보리 목 잘려 간 황토 영마루 떠나간 할머니 상복 깁던 바늘로' 평생 바늘질 하는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시인이 어린 날부터 앓던 늑막염을 치료해줄 길이 없었고 피고름 삼천 사발을 쏟게 했었다.

생각하면 그렇게 짠한 자식이었던 시인은 1979년 9월 29일, 문우 이광복의 소설 현상공모 당선을 축하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면목동 다리 난간에서 추락하여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시인이 말없이 돌아온 고향은 황토흙을 붉게 열어 극진하게 맞아주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던가, 노부부는 죽은 듯 살아 대문 없는 낡은 집을 그림자처럼 드나들었다. 대문 앞 느티나무 고목의 중허리가 부러져 나간 것은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느티나무 고목은 생각 없이 짙은 초록 그림자로 지붕을 덮어 노부부를 상심케 했을 것이다. 노부부는 어느 날, 종일토록 일어나지 않았다. 구천의 길에 나선 노부부를 앞서 시인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슬픔이 가면 또 한 슬픔이 오는 것이어서 장재울 마을은 한동안 웃음이 사라진 채 물속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장재울 마을 건너, 마둔호수 곁에 그의 유택이 있다. 유택은 도로 아래쪽에 동향으로 봉분을 앉혀 장재울 마을을 건너다보게 했지만 초라하고 쓸쓸하다. 묘비가 낯선 참배객을 내려다본다. 묘지 주변에 하염없이 피어 있는 보랏빛 엉겅퀴꽃이 바람에 오래도록 흔들린다. 엉겅퀴꽃이 흔들릴 때마다 임홍재 시인의 '유년의 강'이 묘역을 흐른다. 누이는 그 자신이다.

'온전한 가슴 하나 지니지 못해/삼백 날 피고름만 쏟던 누이야./찬 바람 길을 열고/갈밭에서 서서/바라죄는 가슴을 뜯어/강물에 띄워 버리면/응어리 응어리마다 삭아 버릴까/밤마다 강가에 나와/모래알 씹으며 울던 누나야./목매기 송아지 울음 뒤에/허기진 나날들이 힘줄에 남아/다시금 살아 오르는데/삼천 사발 피고름에 찌든 누이야./이지러진 가슴 안고/강가에 나와/저 혼자 울음 우는 가을 강을 보아라./삼천 사발 피고름에 찌든 누이야.' 노래처럼 임홍재 시인에게 가난은 대물림 되었다.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당선자들 모두 승리의 도취에서 깨어나 가난이 대물림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데 투신해 주었으면 한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을 구차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