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인기 얼떨떨
홍보영상까지 광고 10개나
"겸손함으로 더 열심히 할것"


꼭 '뜨고' 싶었다. "뜨니까 변했네"라는 말 한 번 들었으면 했다. 그러나 마음만 간절했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인회를 열면 채 몇 장 사인도 안 했는데 줄은 금방 끊겼다.

민망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는 그는 이제 단독 사인회를 연다. 오후 2시 시작한 사인회에서 아침 7시부터 그를 기다렸다는 팬을 만난 적도 있다.

개그맨 조윤호(36)의 이야기다.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깐죽거리 잔혹사' 무대에 검정 코트 차림의 조윤호가 나타나기만 해도 사람들은 이제 환호를 보낸다. 조윤호는 싸움을 책으로 배운 '허당' 조폭으로 무술 고수 부녀를 위협하다 도리어 된통 당하는 캐릭터를 맡았다.

그는 "참 말도 안 되는 것 같다"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얼떨떨해 했다.

'깐죽거리 잔혹사'는 지난해 12월 어느날 KBS 희극인실(코미디언실)에서 탄생했다.

개콘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은 개콘 작가실에, 출연 코너가 없는 개그맨들은 희극인실에 모인다. 가장인 조윤호는 그날도 희극인실에서 하루를 보내다 해가 지면 퇴근할 생각이었다.

이때 동료 개그맨 류정남과 이찬, 이성동이 새 코너 아이디어를 짠 대본을 들고 희극인실로 들어왔다. "같이 해보자. 형 좀 살려줘라"고 슬쩍 운을 띄운 조윤호는 즉석 합류했다.

그 개그는 제작진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가 개그맨 안일권이 별도로 준비한 개그와 결합하는 식의 우여곡절을 거쳐 올해 1월 1일 첫 녹화를 했다.

조윤호는 "녹화해도 실제 방송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단잔가'(유단자인가)라고 말하는 리드멘트에서 (관객들 웃음이)터지니까 왜들 이러지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첫 녹화분 방송이 확정된 다음 조윤호를 비롯한 멤버들은 방송국 옥상에 올라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이들이 "제발 3개월만 하자"고 간절히 바랐던 '깐죽거리 잔혹사'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쾌속 순항 중이다.

그 높은 인기는 허술해 보이지만 나름 정교한 출연진 간의 무술 합과 진화하는 차진 대사의 힘에 기인한다.

조윤호는 원래 가수였다.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기 전 2002년 그룹 '이야말로'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조윤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잘됐으면 (인기가)영원하고 평생 간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저는 어린 시절에 힘든 걸 다 겪어봤다"면서 "그러나 그 시절에도 행복하고 즐겁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조윤호는 개그맨이 된 이후 수입이 없어도 견뎠지만 2010년 결혼하고 가장이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경제적 어려움을 더는 견뎌내기 어려운 시점에 '깐죽거리 잔혹사'가 기적같이 찾아왔고 그는 올해 가장 주목받는 개그맨으로 떠올랐다.

조윤호는 개콘 개그맨 중에서는 처음으로 최근 남성복 광고까지 찍었다. 그는 광고를 찍으며 양복 2벌도 받았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홍보 영상까지 포함하면 지금껏 찍은 광고가 10개에 이른다.

조윤호는 '깐죽거리 잔혹사'를 올해 겨울까지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벌써 새로운 코너도 연습 중이다.
하지만 10여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뒤늦게 만발한 스타는 결코 자만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모습이었다.

조윤호는 "한때는 '뜨니까 변했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이제 그 시간을 초월했다. 하하하. 이제 잘됐을 때 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금 인기가 좋다고 거만할 필요도 없어요. 제게 언제 또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올 수도 있잖아요. 그때를 생각해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