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사적 해석 충분히 토론하고
일정부분 합의를 찾아가는
순서야 말로 민주주의의 초석
그 과정을 생략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선인들은 늘 말하지 않았던가


'요코 이야기'란 책이 있었다. 지금 국내 서점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책이다. 출판사가 책을 모두 수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 책은 영어로 적은 소설이다. 일본인이었다 미국 시민이 된 저자가 자신의 어릴 때 경험을 옮긴 자전적 소설이다. 미국 동부의 초등학교 추천도서에 들었다 한국계 학생과 학부모의 반대로 도서목록에서 탈락한 도서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문제가 되자 한국에서 번역된 '요코 이야기'는 출판사에 의해 전량 수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씨는 원래 해방 전 조선의 나남에서 나고 자랐다. 해방과 동시에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식에 서울로 탈출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 아녀자를 겁탈하는 조선인을 만나는 등 온갖 수모를 겪는데 그 내용을 소설에 담았다. 일본 가해자, 조선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을 거슬러 적고 있다. 자신의 기억에 기반해 조선 가해자, 일본 피해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이 책은 숱한 반대를 만나고, 학교에서 밀려나고, 급기야는 서점에서 수거되는 일을 겪었다. 왓킨스씨는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전쟁의 아픔을 그리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인을 악당으로 몰려고 한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경험을 기반으로 했기에 왜곡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역사 적기 논란이 국내에서 일고 있다. 이번엔 '제국의 위안부'란 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안부 역사를 거스른다. 일본의 위안부 모집, 강제 위안의 고통, 일본의 책임 및 사죄 요청이라는 줄거리에서 벗어나 있다. 저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인 기억을 추적한 끝에 다른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종군 위안부를 달리 이야기하는 방식도 있음을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이어 나름의 역사 기술을 통해 일본과 화해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2013년 출간 당시부터 지식계 내에서 논란이 오갔다. 시간이 한참 지나 이번 달에 저자와 출판사를 상대로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소송을 걸었다. 공분한 쪽에서는 저자가 재직 중인 학교로 항의 데모의 발길을 옮기고도 있다 한다. 대중 매체를 통해 빗나간 역사 인식이라는 평단의 비난도 줄을 잇는다. 마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종군 위안부 발언과 맞물려 사회적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고 반 비판하며 언제든 대중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준비를 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은 더 지속될 전망이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두 사건은 역사 문제가 언제나 사회적 관심이 되지만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 어려운 일임을 알려주고 있다. 비록 한 사건은 해결된 듯 보이지만 그것 역시도 잠정적인 결론에 불과하다. 왓킨스씨는 여러 결정에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 의해 다시 추천도서로 채택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제국의 위안부' 사건도 현재로선 비판 쪽의 손이 올라가는 듯 보이지만 저자가 그에 불복하고, 그에 대한 지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논란은 장기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 적기를 놓고 온 시민사회가 동참하고 비판, 반비판하며 참여하는 모습은 그 비용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논의 주체가 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 논란에서 늘 우려되는 일이 하나 있다. 공권력이 역사 논의에 끼어드는 일이다. 힘을 앞세워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심판자를 자처하는 일을 공권력은 자주 저질러 왔다. 이를테면 국정교과서 제작을 독점하려 한다든지, 일부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강권하는 그런 일이다. 심지어 시민사회의 토론 주체에 재정적 지원을 편파적으로 일삼는 일도 그에 해당한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를 토론하는 능력마저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미개한 역사 정책이다. 충분히 토론하는 그런 기회야말로 민주주의 초석이고, 역사적 해석을 놓고 사회가 일정부분 합의를 찾아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야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해석을 익히며 역사의식을 갖는다. 그 과정을 생략하는 민족이야말로 미래가 없다고 선인들은 늘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